데미안 허스트는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영국 출신 젊은 작가군(Young British Artists)의 선두주자다. 38세의 젊은 나이지만 점당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작품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는 런던 근교에 대형 작업장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조수만도 50∼60명에 이른다. 조수마다 하는 일이 분업화되어 있고 제작과정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작가는 여러 작업장을 돌며 지시만 하면 된다. 데미안 허스트처럼 작은 기업 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기업형 작가'가 늘고 있다. 얼마 전 국내에서 개인전을 가진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를 비롯해 리처드 세라,게르하르트 리히터,제프 쿤스 등 스타 작가들이 대부분 '기업형 작가'다. 국내에도 데미안 허스트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많은 조수들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들이 10여명에 이른다. 한지작가 전광영씨가 대표적인 케이스. 작년 8월 판교 부근에 대규모 작업장을 마련한 그는 조수 10명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삼각형 크기의 스티로폴을 고서(古書) 한지로 싼 후 이를 캔버스에 일일이 붙이거나 대형 설치작업을 하는 그는 한국적이면서도 조형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얻고 있다. 지난 6월 바젤아트페어 'Unlimited'전에 출품한 구(球) 형태의 '집합'에는 스티로폴 조각 3만개가 투입됐다. 조각가 유영교 한진섭씨,설치작가 임옥상씨 등도 5∼6명의 조수가 작품 제작에 참여한다. 1세대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씨의 경우 왕성하게 작업활동을 하던 몇년 전만 해도 대륙별로 조수를 뒀다. 백씨는 작품 주문이 들어오면 해당 지역에 있는 조수에게 '작품을 이렇게 만들라'고 지시한 후 자신은 완성작품을 최종적으로 점검한다. '기업형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작품 판매가 확실히 보장되는 '보증수표' 작가여야 한다는 점이다. 전광영씨의 경우 조수 인건비,재료비,작업실 운영비 등으로 한달에 2천만∼3천만원 가량을 지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가의 수입과 작업의 연속성을 감안하면 전씨는 한달에 5천만원 이상의 작품을 팔아야 유지될 수 있는 셈이다. 2∼3년에 한번 개인전을 열어봤자 작품 한두 점 팔기도 힘든 대다수 작가들 입장에서 보면 '기업형 작가'는 꿈 같은 얘기일는지 모른다. 국내에서는 이같은 '기업형 작가'의 작업 방식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다.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직접 작품을 제작했느냐 여부가 아니라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과 아이디어인 만큼 '기업형 작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