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의 스타 PD가 스크린에 진출했다. 방송드라마 '해피 투게더''줄리엣의 남자''피아노' 등을 만들었던 오종록 PD가 차태현 손예진 유동근 등을 기용해 연출한 로맨틱코미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제작 팝콘필름)를 27일 선보인다. 이 영화는 과장된 캐릭터로 결코 존재하지 않을 법한 연애담을 들려준다. 인스턴트식 사랑이 판치는 소비사회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참사랑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일깨우는 작품이다. 제목의 '첫사랑 사수'와 '궐기대회'는 로맨스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첫사랑 일매(손예진)와 결혼하는 게 인생의 최대 과제인 주인공 손태일(차태현)은 현대 젊은이치곤 '천연기념물'에 가깝다. 일매를 차지하기 위해 사전을 외운 뒤 찢어먹는 '전설적인' 공부 방식으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태일은 바다에서,회사 앞에서,결혼식장에서 그녀를 향한 사랑의 시위를 벌이는 극단적인 성격이다. 특히 태일이 일매의 결혼식장에 뛰어든 장면은 로맨틱코미디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졸업'(67년) 이래 숱한 신부들이 결혼식장을 뛰쳐나갔지만 이 영화에서는 신랑 승노(이병욱)가 신부 일매와의 결혼 포기를 선언한다. 로맨틱코미디에서 남성이 결혼식장을 제발로 걸어나가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플레이보이 승노가 촌놈 태일의 사랑 앞에 굴복하는 이 장면은 '사랑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평생 도전해야 할 인생의 마라톤'임을 시사한다. 승노가 와튼스쿨 경영학석사를 마치고 세련된 매너를 갖춘 신흥 엘리트라면,태일은 억센 사투리를 구사하는 전통 엘리트라는 점에서 서구풍조(승노)보다는 토속정서(태일)에 가깝다. 세 주인공들의 성격 변화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추동력이다. 태일은 일매를 얻기 위해 공세를 펼치다가 돌연 그녀의 순결을 사수하려는 작전을 전개한다. 일매의 아버지이자 태일의 담임교사인 주영달(유동근)은 매를 휘두르는 강력한 캐릭터에서 태일의 뜻을 좇는 약한 인물로 서서히 변화한다. 태일을 버리고 승노로 택하는 일매의 변심은 드라마의 분위기를 코미디에서 멜로로 바꾸는 기폭제가 된다. 다만 유동근과 차태현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그리 매끄럽지 못하고 객석에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 흠이다. 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