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송두환 특별검사팀은 17일 산업은행이 현대상선 및 현대건설에 총 5천5백억원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긴급체포했다. 특검팀의 김종훈 특검보는 이날 밤 "박지원 전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긴급체포했으며 구속영장 청구여부는 18일 중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장관이 사법처리됨에 따라 특검수사는 앞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사 및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는 일만 남겨 놓게 됐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이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어서 김 전 대통령의 처리문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앞서 특검팀은 이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다시 불러 박 전 장관과의 대질조사를 벌였다. 특검팀은 대질조사를 통해 대북송금을 누가 기획했는지 정상회담의 대가로 송금이 이뤄졌는지 등을 조사했다. 특검팀은 또 대북송금이 이뤄진 2000년 6월 전후에 현대건설의 자금 1백50억원이 1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 1백50장으로 나뉘어 사채시장을 통해 돈세탁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의 관계자는 이날 "현대건설 예금계좌 및 연결계좌에 대한 자금추적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으며 현재 자금의 최종 목적지를 추적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익치 전 회장은 이날 새벽 박 전 장관과의 대질조사에서 "2000년 4월께 정몽헌 회장의 지시로 현대건설의 1백50억원을 박 전 장관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의 변호를 맡은 김주원 변호사는 "박 전 장관은 당시 이익치 전 회장을 만난적도 없으며 그 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정몽헌 회장이 2000년 4월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이 전 회장에게 1백50억원을 건네며 "박 전장관에게 건네줘라. 도움을 요청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전회장은 그러나 이 돈을 친구인 김 모씨 계좌로 입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특검팀이 계좌추적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박 전장관이 이 전회장에게 돈세탁을 부탁한 것으로 몰아 긴급체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특검팀의 수사결과 이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확인될 경우 특검수사는 송금성격 규명이라는 애초의 목적과 달리 정치자금 스캔들로 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특검팀은 이날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에게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에 총 5천5백억원을 대출해 주도록 압력을 행사한 이기호 전 수석을 직권남용 및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의 공범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