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5:33
수정2006.04.03 15:36
안복현 제일모직 사장(54)은 지난 98년 취임 후 5년동안 직원들에게 '대표이사 편지'를 보내고 있다.
임직원들이 합심해 IMF의 거친 파고를 헤쳐나가자는 뜻에서 취임사를 겸해 처음으로 e메일을 보낸 뒤 지금까지 모두 78통의 편지를 직원들에게 보냈다.
"편지는 저와 전 임직원의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가교입니다. 회사의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직원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는 수단이죠."
안 사장의 말대로 편지 안에는 경영상태는 물론이고 회사 속사정들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이탈리아 출장길에 세계 유수의 모직업체를 둘러보고 난 뒤 느낀 소감을 적어 회사의 발전 방향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가 하면 주가를 올리기 위해 기업 PR와 IR광고를 제작해 주요 경제지에 집중 홍보할 것을 사원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그 동안의 내용만 모아도 분량만도 A4용지 9백페이지, 5년간 제일모직이 걸어온 사사(社史)가 한눈에 보일 정도다.
'대표이사 편지'는 안 사장에게는 '투명경영'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는 "조직 구성원들이 경영에 대해 공감대를 갖고 자기 업무를 상황에 맞게 조정하면서 모두가 한 몸처럼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경영 전반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매달 초 월례조회 시간이면 안 사장은 화이트 보드 앞에 선다.
딱딱한 연설대에 서서 '공자님 가라사대'를 외는 대신 경영실적과 사업부별 경영현황, 잘한 점과 반성할 점 등을 직접 화이트 보드에 적으면서 직원들과 대화한다.
이 조회는 여수와 구미사업장에도 위성으로 동시에 생중계돼 모든 임직원이 회사의 경영상황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투명경영과 함께 안 사장이 강조하는 경영철학은 '열정 컴퍼니'.
일하고 싶은 재미있는 일터로 가꾸어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일모직은 'Exciting & Energetic(활기차고 열정적으로)'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다양한 조직활성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물고기(FISH) 철학'.
FISH 철학은 부도직전에 있던 미국 시애틀의 파이크플레이스 어시장 상인들이 신바람나게 일하는 원인을 분석해 직장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던 베스트셀러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에서 제시하고 있는 경영철학이다.
안 사장은 이 'FISH 철학'을 제일모직만의 조직문화로 적용시키기 위해 '피시맨' 84명을 뽑아 조직문화 활성을 주도하게 만들었다.
'칭찬경영'도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한 안 사장만의 비법.
칭찬 9번에 벌은 1번이라는 '9:1 법칙'을 통해 칭찬이 조직내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3년전에는 안 사장이 첫 주자가 돼 '칭찬릴레이'도 시작했다.
지금은 잘 나가는 CEO지만 안 사장에게도 고민으로 밤잠을 설쳐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부임 직후 늘어가는 적자 폭을 감당못해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구체적인 목표와 비전을 제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임원들과 2박3일동안 머리를 맞대 논의를 한 뒤 1년내에 흑자전환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2천페이지 정도 빼곡히 적어뒀습니다."
그 중 하나는 모든 낭비요소를 제거하는 도요타 생산 시스템(TPS)의 적극 도입이었다.
팀장 이상 주요사원을 1주∼1달씩 일본으로 연수를 보내 경영혁신 방법을 직접 전수받게 했다.
이들을 경영혁신의 전도사로 만들어 조직을 변신시켜 나갔다.
"사원들의 호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회사를 수렁에서 건져내는데 모두 한마음이 됐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당소 수출을 60% 정도 늘린다는 계획이었으나 목표치보다 2배 이상 높은 성과를 올렸어요."
2천페이지에 빼곡히 적어둔 방법중 몇 퍼센트나 실천에 성공했냐는 질문에 안 사장은 "이제 그 항목들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라며 "모두 경영자를 믿고 열심히 따라준 직원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