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4:58
수정2006.04.03 15:00
첩보원 제임스 본드 역으로 유명한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을 맡은 영화 '에블린'이 오는 20일 개봉된다.
1953년 어린 자녀에 대한 동거양육권을 둘러싼 아일랜드의 법정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일곱살짜리 딸 에블린의 아버지인 데스몬드 도일 역의 브로스넌은 말끔한 복장에 과장과 허세로 포장한 바람둥이 첩보원이 아니다.
부스스한 머리털과 꾀죄죄한 옷,자글자글한 얼굴 주름이 있는 도일은 술에 찌들어 살면서 딸을 때린 수녀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다혈질이다.
"염병할 법 따르다 내 딸만 빼앗겼어"란 대사는 그의 성격을 대변해준다.
50년 전 아일랜드를 휩쓸었던 실업난 탓에 직업을 잃고 아내마저 달아난 도일은 잃어버린 동거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법정 싸움을 시작한다.
당시 아일랜드의 가족법은 양쪽 부모의 동의 아래서만 자녀의 양육권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흠잡을 데 없는' 부모가 아닌 경우 상당수 편부모의 아동들은 강제로 고아원이나 수녀원 등에 보내졌다.
이런 가족법은 아일랜드의 지배세력인 가톨릭 교단과 정부간에 이뤄진 결탁의 산물이었다.
자녀에 대한 동거양육권을 되찾으려는 부정(父情)을 그린 점에서 지난해 화제작 '아이 엠 샘'과 비슷한 구조이지만 샘이 바보인 반면 도일은 무능한 아버지란 점이 다르다.
베레스포드 감독은 사건의 역사성과 현명한 판결을 도출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서술적인 정통 드라마 양식을 취했다.
에블린이 수녀에게 구타당한 사실을 밝히는 법정 진술 장면에선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노장 감독의 연출 솜씨가 엿보인다.
에블린이 한동안 적절한 답변을 하지 않아 관객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든 뒤 어른 뺨칠 정도로 완벽한 기도문으로 그녀의 영민함과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고 결국 판결을 뒤집는다.
전체 관람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