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골프의 '지존' 아니카 소렌스탐(32.스웨덴)이 마침내 58년간 금녀(禁女)의 철옹성을 쌓아온 미국남자프로골프(PGA) 투어 무대에 발을 디딘다. 소렌스탐은 오는 23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골프장(파70. 7천80야드)에서 열리는 PGA 투어 뱅크오브아메리카 콜로니얼(총상금 500만달러)에 출전한다. 여자 선수가 PGA 투어에 출전하는 것은 지난 1945년 베이브 자하리스가 로스앤젤레스오픈에 나선 이후 58년만이다. 당시 자하리스는 컷을 통과했으나 3라운드에서 79타를 치는 부진을 보이자 기권, 최종 순위는 기록에 남지 못했다. 이후 감히 도전장을 내민 여자 선수가 없었던 PGA 투어에 소렌스탐이 출사표를 던지자 세계 골프팬들은 '세기의 성(性) 대결'이 어떤 결말을 낼지에 대해 일찌감치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일(한국시간) 현지에는 수많은 사진기자들이 몰려들어 소렌스탐의 모습을 담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이는 우즈가 출전한 대회에서도 좀체 볼 수 없는 광경. 지난해 대회 때 178명이던 취재 기자는 583명으로 불었고 클럽 하우스에는 '아니카 잘해라'라는 글귀가 새겨진 배지와 소렌스탐의 사인볼 등이 팔리는 등 분위기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US오픈 준비를 위해 이 대회를 쉬기로 했고 최경주(33.슈페리어.테일러메이드)도 출전하지 않는다. 필 미켈슨, 데이비드 톰스(이상 미국) 등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고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닉 프라이스(짐바브웨)도 최근 상승세가 돋보여 대회 2연패를 겨냥하고 있다. ◇소렌스탐, 컷 통과 여부 논란 여자프로골프에서 사상 첫 18홀 59타의 대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지난해 13승을 쓸어담았던 '지존'이지만 소렌스탐은 상위권 입상은 커녕 컷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이 지배적이다. 골프 전문가들은 소렌스탐이 컷 기준선에서 3타 가량 모자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콜로니얼의 지난해 컷 기준타수는 3오버파 143타. 소렌스탐이 컷오프의 수모를 면하려면 1, 2라운드 모두 71타 이내에 진입해야 안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지난 3월 콜로니얼골프장에서 실전 연습을 치른 소렌스탐은 버디 2개와 보기 4개로 2오버파 72타를 쳐 컷오프 모면이 쉽지 않은 목표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당시 소렌스탐은 246야드 짜리 파3홀에서 티박스를 215야드 지점으로 당겨놓고 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소렌스탐의 컷 통과 전망은 밝지 않다. 그러나 소렌스탐이 차분하게 홀을 공략해내면 36홀 합계 이븐파 정도는 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드라이브샷 비거리 극복이 과제 소렌스탐이 컷 통과라는 1차 목표를 달성하고 상위권 입상까지 노리려면 일단 남자 선수과의 비거리 차이부터 극복해야 한다. 소렌스탐의 올 시즌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275.4야드. 이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는 웬디 둘란(276.6야드)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장타'지만 PGA투어에서는 185명 가운데 162위 딘 윌슨(275.9야드)과 163위 에스테반 톨레도(275.3야드) 사이다. PGA 투어 1위 행크 퀴니(315.3야드)와는 무려 40야드 가량 차이가 나고 290야드 안팎인 투어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15야드 정도 짧다. 그나마 올해 소렌스탐의 비거리는 겨울 훈련 동안 집중적인 체력 증강에 나선 결과 지난해 265.6야드에서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짧은 드라이브샷 비거리는 당장 그린 적중률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소렌스탐의 정교한 아이언샷이 무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소렌스탐은 LPGA 투어 대회에서 평균 76.5%의 높은 그린 적중률로 1위에 올라있지만 페어웨이 우드와 롱아이언을 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같은 정확한 그린 공략은 어렵다. 하지만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한 닉 프라이스(짐바브웨)가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280야드에 불과한 '단타자'라는 점을 들어 비거리 핸디캡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빠른 그린, 깊은 러프도 숙제 소렌스탐이 넘어야 할 산은 비거리 뿐 아니다. LPGA 투어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과 달리 PGA 투어 대회 개최 장소는 그린 스피드가 한층 빠르고 그린 표면도 단단하다. 보통 PGA 투어 대회 그린 스피드는 LPGA 선수들은 US여자오픈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수준. 특히 그린 표면의 경도가 매우 높아 탄도가 높고 백스핀이 강한 샷이 아니면 볼을 세우기가 어렵다. 또 소렌스탐은 페어웨이 양쪽과 그린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러프도 조심해야 한다. PGA 투어가 열리는 골프장의 그린 주변 러프는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차라리 벙커가 낫다"고 할만큼 질기고 두텁다. LPGA 투어 대회에서 그린을 벗어나도 러프가 길지 않아 정교한 쇼트게임으로 파세이브에 성공하던 소렌스탐도 보기를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페어웨이 안착률(73.8%)이 매우 높은 소렌스탐이 러프를 피해가는 영리한 플레이를 펼친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5홀과 파3홀 공략이 성적 좌우 소렌스탐의 '성공'여부는 파5홀에서 얼마나 많은 버디를 잡느냐와 파3홀에서 얼마나 보기를 피하느냐에 달렸다. 파5홀은 단타자라도 또박또박 공략하면 세번째샷을 100야드 이내에서 칠 수 있어 얼마든지 버디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가 열리는 콜로니얼골프장은 파70짜리여서 파5홀이 2개 뿐이다. 때문에 소렌스탐에게는 이 2개 밖에 없는 파5홀에서는 반드시 버디를 잡고 넘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1번홀(파5. 565야드)은 소렌스탐에게도 손쉬운 홀이고 11번홀(파5. 609야드)도 꽤 길지만 드라이버-스푼-웨지로 공략할 수 있다. 4개의 파3홀은 소렌스탐에게 커다란 시련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4번홀(파3.246야드)은 지금까지 PGA 투어 선수에게도 단 한번의 홀인원을 허용하지 않았고 버디 잡기도 어려운 곳이다. 그린이 아주 까다로운 8번홀(파3.192야드), 돌개바람이 항상 부는 13번홀(파3.178야드), 역시 그린이 어려운 16번홀(파3.188야드) 등은 소렌스탐이 롱아이언이나 페어웨이 우드를 잡아야 하는 곳이라 파세이브가 쉽지 않다. 12개의 파4홀은 476야드에 이르는 3번홀을 비롯해 대부분 400야드를 훌쩍 넘는 긴 홀들이다. ◇남자 선수들의 따돌림도 부담 소렌스탐의 PGA 투어 대회 출전에 대한 남자 선수들의 시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일부 선수들은 노골적인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고 '잘해라'고 격려해준 선수들도 '립서비스'일 뿐이다. 비제이 싱(피지)은 "우승했으니 1주일 쉬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대회 출전을 보이콧했고 타이거 우즈(미국)도 '당초부터 예정에 없었다'며 소렌스탐과 함께 경기를 펼치는 것을 꺼리는 눈치. 총상금이 500만달러에 이르는 대회지만 출전 선수 가운데 세계 랭킹 10위 이내 선수 가운데 데이비드 톰스, 필 미켈슨 등 단 2명 뿐이다. '여자에게 뒤지면 무슨 망신이냐'는 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내심 소렌스탐이 형편없이 무너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PGA 투어 선수라면 한결같다는 관측이다. 소렌스탐에게는 이런 분위기에 주눅을 들 수도 있는데다 '뭔가를 보여 주겠다'는 투지도 자칫 플레이를 망칠 수 있다. 심리적 압박감을 벗어나 자신의 플레이에만 충실한다해도 쉽지 않은 경기에서 이런 부담은 소렌스탐이 반드시 떨쳐내야 할 과제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