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반대여론이 팽배했던 콜금리 인하를 단행한 데는 경제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금리인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부양책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이 4%도 어렵다는 판단이다. 특히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지면 심각한 실업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한은은 내다봤다. '고용대란'을 우려해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박승 한은 총재(금통위원장)는 경기.고용악화와 부동산 투기 문제 사이에서 고민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금통위는 결국 부동산 과열 등 저금리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현 상황에선 경제의 '안정'보다 '성장'이 더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 한국 경제 어디에 있나 박 총재는 현재의 경기상황에 대해 "폭서(부동산투기)와 혹한(경기악화)이 공존해 에어컨을 들일지, 난로를 들일지 판단하기 어려운 특이한 상황"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나라 안팎의 악재로 인해 경기는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데 부동산시장만 '나홀로 한여름'인 점을 빗댄 말이다. 박 총재는 또 "당초 국내 경제는 2.4분기에 바닥을 찍고 3.4분기부터는 회복되는 'V'자형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하반기 경기전망이 불투명해진 지금은 4.4분기 이후로 회복세가 미뤄지는 'U'자형이나 장기간 침체가 지속되는 'L'자형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북핵사태 등 지정학적 위험과 소비.투자 부진으로 경기하강 추세가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설명이다. ◆ 금리 왜 내렸나 박 총재는 콜금리 인하를 통한 효과를 크게 세 가지로 언급했다. 첫째는 고용대란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총재는 "경제성장률이 현재 전망치인 4.1%에서 1%포인트 하락하면 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며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경제의 안정성이 다소 훼손되더라도 콜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국민들에게 향후 경제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총재는 "경기상황에 대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방관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책의지를 보여주는데 콜금리 인하의 목적이 있다"며 '경제 치어리더' 역할을 자임했다. 마지막으로 콜금리를 낮추면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지출을 늘리는 효과가 발생, 경기를 부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박 총재는 "2백30조원에 달하는 가계대출과 2백20조원 규모의 중소기업 대출, 3백만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 등이 금리인하의 혜택을 직.간접적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5조원가량의 정부 추경예산과 콜금리 인하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면 올해 4%대 성장이 가능하다는 예상이다. ◆ 콜금리 추가인하 가능성 박 총재는 '경제성장률 4%'를 '마지노선'이라고 규정하고 국내 경제에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져 성장률이 이를 밑돌게 되면 언제라도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4%를 넘어서면 경기부양에서 손을 떼겠다고 덧붙였다.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한 박 총재의 발언은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정책변화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열어 놓았다는 것. 앞으로 경기가 변할 때마다 수시로 금리를 변동시킬 수 있으므로 시장 참가자들은 이에 미리 대비하라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따라서 이번 부양조치를 통해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4%대 성장이 불확실해지면 또 다시 금리가 낮춰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다른 하나는 한은이 안팎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보호막'을 미리 쳐놓은데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시중은행의 한 채권딜러는 "앞으로 정책기조를 또 한번 변화시킬 경우를 대비해 안전판을 일찌감치 마련해 놓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지난 1년간 수 많은 금리인상 및 인하 압력이나 질타에도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던 한은의 태도를 감안할 때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