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무기로 기업들의 접대문화를 개선하겠다던 국세청의 '세정 혁신' 계획이 상당폭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접대문화를 바로잡아야 진정한 기업경쟁력도 강화된다"는게 국세청의 혁신 논거였지만, 장기 불황 조짐이 뚜렷한 국내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정부 내의 현실론에 한 걸음 물러선 모양새다. 접대비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용섭 청장이 지난 3월 취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업들이 접대경쟁에서 품질경쟁으로 전환해야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하면서부터다. 그동안 '후하게' 비용으로 인정해줬던 접대비를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얘기였다. 이후 4월8일 열린 세정혁신추진위원회에서 '골프장과 룸살롱 등에서 사용한 접대비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도록 한다'는 개혁 방안이 나왔다. 이에 대해 기업은 물론 정부 내 다른 부처들로부터도 적지 않은 반론이 제기됐다. 기업들은 국세청이 제시한 '업무와 관련된 접대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모호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며 정상적인 접대까지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정경제부 등 다른 부처들도 최근 내수형 경기불황 조짐이 증폭돼있는 상황에서 소비 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는 조치는 재고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청와대도 접대비 인정 대상 축소 방침에 대해 '시기상조론'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업들의 접대비 손비한도 인정 대상은 현재의 '관행'을 유지하되 접대비 인정 한도를 축소, 과다한 접대비 지출을 줄여 나가도록 하는 '속도조절'에서 해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보다 내수 불황이 더 심각한 일본에서도 접대비 인정 범위를 엄격하게 축소한 바 있어 정부의 이번 '현행 유지 선회' 방침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지난해 지출한 접대비 4조7천억원 가운데 룸살롱과 골프장 등에서 사용한 접대비는 2조원대에 이르렀다. '접대'라는 명목으로 일부 기업 임직원들이 방만하게 사용하는 자금까지 손비로 인정해 주는게 타당하냐는 문제제기가 가능한 대목이다. 현행 법인세법에 접대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조항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점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국세청이 택한 '세정 혁신' 방식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인이 업무와 관련해 지출한 금액'이라는 접대비 규정을 근거로 이 범위에서 벗어나면 비용 인정을 거부, '조용히' 접대문화를 개선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도 관행을 이유로 이 이를 눈감아 오다 갑자기 접대비 인정대상 축소방침을 들고 나와 이런 결과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