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아랍민족주의를 보다 강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이는 미군의 그릇된 전략 때문에 전쟁에 실패할 것이라는 비판만큼이나 틀린 것이다. 사실 이라크의 차량폭탄테러나 자살공격 지원자들의 이라크 입국행렬은 연합군이 전쟁의 수렁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아랍민족주의의 부활 가능성이 약하다는 점에서 아랍인들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되고 있다. 우선 이번 전쟁은 초단기에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전후 미군의 이라크 점령도 길어야 3년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미국의 거듭된 공언대로 전쟁의 목표가 영토분쟁이 아니라 사담 후세인 정권과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다는 대량살상무기의 제거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미·영연합군은 전쟁의 패배로 상처받을 아랍인들의 자긍심을 최소화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점령지에 미 성조기나 영국의 유니온잭기를 게양하는 자극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있으며,이라크 민간인의 희생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셋째,옛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이슬람권은 미국과 함께 공산주의 무신론자들을 격퇴한다는 인식을 공유했지만,이번 전쟁에서는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표적에 오른 이란과 시리아가 앞장서서 미국과 싸울 이유가 없으며,요르단과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는 미국편에 선지 오래다. 어느 나라도 반미 게릴라전을 위한 기지를 제공하는 무모한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아랍의 반미 단결은 지나친 기대다. 범아랍 민족주의에 바탕한 정치적 결속은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다. 역설적이지만 이를 짓밟은 장본인은 바로 후세인이다. 그는 1990년 범아랍 권익을 명분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했지만 많은 아랍국가들을 미국쪽으로 돌려세우는 우를 범했다. 게다가 지금은 50,60년대 '아랍의 별'로 추앙받았던 이집트의 카말 나세르와 같은 걸출한 지도자도 없다. 또 이란혁명이나 알 카에다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득세할 가능성도 상당히 낮아보인다. 오히려 9·11테러는 서방에 대한 종교적 공격이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따라서 앞으로의 문제는 아랍인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급증하는 인구와 경제적 곤란으로 허덕이는 아랍권은 이라크의 전쟁 패배로 또다른 부담을 안게 됐다. 전쟁 초기 이라크의 선전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재판이라며 환호했던 그들은 실제 이라크 패배가 확정될 경우 심각한 굴욕감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전쟁의 목표가 후세인 정권을 타도,이라크를 해방하는 데 있다는 미·영연합군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아랍의 자부심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굴욕감은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더욱이 아랍인들의 굴욕감을 다독여줄 서방국가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미국과 영국은 후세인과 대량살상무기 제거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은 물론 세계를 위해서도 정당한 것이라 믿고 있다.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를 새로운 민주주의의 본보기로 만드는 데도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 스스로 이같은 굴욕감을 떨치지 못하면 미국과 영국의 노력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정리=우종근 기자 rgbacon@hankyung.com -------------------------------------------------------------- ◇이 글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게재된 'At the gates of Baghdad'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