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의 대량 환매사태로 유동성 부족 위기에 직면한 투신사들은 13일 SK글로벌 관련 펀드뿐만 아니라 모든 펀드에 대해 사실상 '환매유보' 조치를 결정했다. 이로써 이번 환매사태는 외형상 진정 국면에 접어들 공산이 높아졌다. 물론 환매 유보 조치의 주 대상은 금융회사 등 법인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법인자금과 개인자금의 형평성 시비 등 여러가지 논란을 불러올 전망이다. 금융 혼란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의 '환매중단' 조치가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환매 유보 조치 =투신사 사장들이 이날 업계 자율결의 형식을 빌려 환매 유보에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한 것은 이번 사태로 자칫 투신업계가 공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가령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투신사들이 너도 나도 채권을 팔아치우면 채권금리가 폭등하고, 그 결과 펀드수익률은 떨어져 또 다른 환매를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양만기 투신협회장은 "모든 투신사들이 대량 환매가 불러올 파장을 잘 알고 있다"면서 "각 투신사들은 환매 요청 고객들을 설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조치는 은행 보험 연기금 정부투자기관 등 기관성 자금의 대량 인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등도 금융회사들에 환매 자제를 '반강제적'으로 종용하고 있다. ◆ 투자자간 형평성 시비 =이번 환매 중단 조치는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현행 증권투자신탁업법에는 '유가증권 매각 지연 등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투신사는 환매를 연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여러가지 형평성 시비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A투신사 사장은 "특정 기관엔 돈을 주고 다른 기관에는 환매를 거부하면 당연히 불만이 나오게 마련"이라면서 "이는 각 사별로 형편에 맞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업계 자율로 결정된 환매 중단 조치를 각 투신사들이 모두 지킬지도 의문이다. 투신사별로 현금 유동성에 여유가 있는 곳도 있고 그렇지 못한 회사도 있기 때문이다. B투신사 사장은 "현금 여유가 있는 회사들은 앞으로의 영업관계를 위해서라도 쉬쉬하면서 환매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 단기효과에 그칠 듯 =투신업계는 이번 환매 중단 조치가 단기 처방에 그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번 금융 혼란을 계기로 MMF의 위험성이 부각된 만큼 단기자금을 맡긴 금융회사들은 지속적인 환매 요청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우채 환매조치 이후 1년간 1백18조원의 자금이 투신사에서 빠져나갔다. 99년 7월 말 2백52조원이던 투신사의 수탁고는 2000년 6월 말 1백34조원으로 줄었다. 따라서 이라크전쟁,북핵문제 등 대외 악재가 사라지고 금융시장이 급속히 안정을 찾지 않는 한 투신사의 유동성 위기는 좀처럼 진정되기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펀드 환매와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투신사들이 금융시장의 '핵폭탄'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