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살...입안가득 동태알...그래, 이맛이야..'동태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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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나선 시장에서 들어가기가 가장 난감했던 곳은 바로 생선가게였다.
투박한 생선 칼로 서너 번 내리쳐 동태를 토막내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어머니 치마 뒤로 숨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와중에도 행여나 놓칠세라 곁눈질로 훔쳐보던 잽싼 손놀림의 동태 포장은 좋은 구경거리였다.
쌓여 있는 신문지 더미 위로 동태를 던지고 둘둘 말아 양쪽 끄트머리를 여미는 솜씨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저녁상에 올라 온 동태찌개의 최고 인기 부위는 뭐니뭐니해도 알이었다.
의례 가장의 차지가 되고 말지만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엄격한 룰이 존재했다.
아버지께서 입맛이 없으시다며 한 덩어리 슬쩍 국그릇에 덜어 주시면 식구들 눈치볼 것 없이 얼른 입 속으로 밀어 넣고 눈을 감았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두툼한 생선살의 보드라움과 씹으면 흩어지는 탱탱한 알의 고소함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몇십 년이 지나도록 기억 속에 맴도는 그 맛은 오늘도 도심의 골목골목을 헤매게 만든다.
동태탕만을 전문으로 하는 세 집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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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동태탕(여의도 KBS별관 뒤 오륜빌딩 3층,02-782-7707)=KBS 별관 뒤에는 여의도에서도 유난히 맛있는 집들이 많이 몰려 있다.
점심시간이면 유명 식당 앞은 순서를 기다리는 넥타이 부대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동태탕만을 전문으로 하는 이 집도 예외는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동태가 신선하고 양이 푸짐하기 때문.일반적으로 동태탕 보다는 "동태 알,내장전골"을 많이 찾는데,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곤이며 애(생선 내장)가 그득히 들어간다.
무와 콩나물로 우려낸 시원한 육수에 주인의 고향 땅 "진안"에서 보내온 태양초고추가루를 넣어 얼큰한 국물을 만든다.
동태의 질도 만만치 않다.
전문점이기에 단골 도매점에서도 최상급 동태만을 엄선해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단박에 퇴짜를 맞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싸 일반식당에서는 엄두를 못내는 꼬불꼬불한 곤이가 그득해 쫄깃거리는 씹힘이 일품이다.
생선 내장의 백미로 꼽히는 동태 애는 특유의 기름기가 혀를 감싸고 돈다.
얼큰한 국물 몇 수저로 입안을 시원하게 정리하고 살을 발라먹으면 비릿한 단내가 퍼진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동태국물을 탐닉하다 보면 늘 밥이 모자란다.
남은 국물에 밥공기를 털어 넣고 듬성듬성 말아 입으로 넘기면 얼큰함은 어느새 고소함으로 변해있다.
반쯤 풀어헤친 넥타이의 샐러리맨들은 작은 행복을 안고 사무실로 발길을 옮긴다.
연지얼큰동태국(종로5가 보령약국 뒤,02-763-9397)=종로 5가 보령약국을 끼고 옆 골목으로 서른 걸음 남짓 걷다보면 좁은 골목 안이 동태찌개 냄새로 진동을 한다.
"연지 얼큰 동태국".메뉴는 동태국,동태찌개 달랑 두 가지.미리 끓였다가 1인분씩 덜어주기 때문에 국물이 진하고 맛이 깊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집 동태국의 매력은 건더기.1천원을 더 주고 "특 동태국"을 주문하면 애를 한 주먹 더 넣어주는데 질릴 정도로 양이 많다.
후후 불어 국물을 한 수저 넘기면 시원함에 정신이 번쩍 들고 이내 콧등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동태는 두 덩어리가 기본이고 나머지는 애가 자리차지를 하고 있다.
보드랍게 씹히는 탄력이 좋고 고소함이 혀에 척척 감긴다.
어찌나 맛이 좋은지 수저를 든 손이 무척 바빠진다.
시원한 국물을 만들어 내는 일등 공신은 푹 끓인 무다.
물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폭폭하게 삶아진 무의 개운함이 내장의 기름기를 가셔준다.
식탐 때문에 늘 "특 동태국"을 시키지만 예외 없이 남기게 된다.
또 하나의 메뉴인 동태찌개는 소주 안주용으로 안성맞춤이다.
다 먹고 난 냄비에 볶아주는 밥도 놓치기 아까운 별미.저렴한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다.
김영희 강남동태찜(서울 역삼동 상록회관 뒤,02-553-9748)=상호에 붙어있는 "김영희"는 동태찜을 개발한 원조 할머니의 이름이다.
이 집에서 조리법을 전수 받아 강남 한 복판에 동태전문점을 열었다.
동태찌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간판을 보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양식당으로 오해했을 정도로 인테리어가 세련됐다.
콩나물을 듬뿍 넣고 매콤하게 볶아내는 동태찜도 일품이지만 이 집을 자주 찾는 이유는 동태맑은탕 때문이다.
메뉴에도 적혀있지 않은 음식을 손님들은 용케도 알아내서 주문을 한다.
비법을 캐는 집요한 질문에 늘 "아직도 연구중 인걸요"라며 겸손하게 답하는 젊은 여주인을 닮아 음식들이 깔끔하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는 뽀얀 국물이 하나 가득.양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재료의 선도만큼은 믿을만하다.
콩나물과 무를 기본으로 육수를 우리고 동태 토막과 굴,조개,버섯 등을 올려 끓여 내오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특유의 동태 향은 살아있지만 비릿함은 제거했다.
고개를 숙이고 연신 국물을 들이키다보면 속이 편안해진다.
복이나 대구지리와는 또 다른 특색 있는 맛을 제공한다.
< 김유진.맛 칼럼니스트.MBC PD showboo@dreamwiz.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