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심國'에 대한 오해 .. 金仁哲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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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대외적으로는 동북아 중심국가를 건설하고,대내적으로는 지방분권과 과학기술중심사회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날 우리는 21세기 동북아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 나갈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한반도는 동북아의 물류와 금융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중국과 일본,그리고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지난날에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었으나,오늘날에는 오히려 기회를 주고 있다는 연설대목에서 그는 취임식장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이처럼 '동북아 중심국가론'은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와닿는 것이지만 너무 축약된 표현이기 때문에 본래의 뜻과 달리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한국이 동북아의 '허브(hub)국가'는 될 수 있어도 '중심국가'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 걸쳐 한국이 허브국가는 될 수 없으나,비교우위가 있는 '특정 분야'에서는 허브국가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한국에서 허브를 중심국가로 번역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한반도 전문가인 리빈(李濱) 중국대사는 지적한다.
최근 자신이 주최한 만찬자리에서 "허브 뒤에 국가를 붙이게 되면 상징적 의미가 추가되면서 관계국들에 괜한 오해를 사게 된다"고 주장했다.
리 대사는 북한에서 유학과 외교관생활을 합쳐 19년을 보냈고,한국에선 외교관 신분으로 6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우리말 구사력이 뛰어나다.
한국 신문 기사의 행간을 읽을 줄 알고,한글 단어속의 숨은 뜻도 헤아릴 줄 아는 언어전문가로서,스스로를 '동북아인'이라고 자처한다.
허브는 중국말로 '중추(中樞)' 또는 '추뉴(樞紐)'로,일본말로는 '센터'로 번역된다.
한국말로는 '중심'으로 번역되고 있는데,중심 뒤에 국가까지 붙여놓으면 '동북아의 맏형국가'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풍기게 되므로 중국 일본 등 다른 동북아인들은 이 표현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중심국가'라는 말이 사용될 것 같다.
중심 대신에 허브로 쓸 수도 있겠으나,우리 국민들에게는 생소해 쓰기는 힘들 것이다.
허브는 외래어로 자동차 또는 수레바퀴의 중심부분을 가리키며,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곳으로 정의(定義)될 수 있다.
허브의 의미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는 허브공항이다.
가까운 두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항공노선은 없어도 좀 멀리 떨어져 있으나 여러 도시를 연결해 주는 허브공항을 거치면 저렴한 비용으로 두 도시를 왕래할 수 있는데 이것이 허브공항의 강점이다.
중심국가라고 하면 허브의 원래 뜻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함축성도 있어 우리 국민들이 쓰기에 편하다.
그러나 21세기 협력시대에 동북아 강대국의 이해와 협조를 얻을 수 있는 표현을 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21세기는 동북아시대'라는 말은 이미 많이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내용과 뜻을 담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동북아 경쟁시대를 의미하는지,동북아 긴장시대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만일 21세기가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의 시대라고 한다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동북아의 공동노력과 협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동북아는 '동북아 협력시대'로 써주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동북아 협력시대에 한국이 중심역할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데 다른 나라 동북아인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오히려 두 손 들어 환영할 것이다.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국가'라는 말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적인 설명은 없었다.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동북아에 번영의 공동체를 이룩하고,이것을 다시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한국이 중심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포부이며 정책목표다.
그러므로 '동북아의 중심국가는,동북아 협력시대에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설명하고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
ickim@yurim.s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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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