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1:38
수정2006.04.03 11:40
지난해 7월 하비 피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자신의 봉급을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수준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피트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CNN 등 미국 언론들은 "경제위기에도 정신 못차린 미국 지도부"라며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행이 최근 총재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의 급여를 30% 가량 올리면서 피트 위원장과 유사한 논리를 편 것이다.
물론 피트 위원장과 달리 한은 총재가 직접 나서진 않았다.
하지만 인상 근거로 다른 국책은행의 연봉 수준을 든 것이나 현재 국내 경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여론의 지탄을 받자 슬그머니 인상안을 백지화한 것도 닮은 꼴이다.
한은은 당초 총재의 연봉을 1억9천5백만원에서 2억5천4백만원으로 30.2% 올리고 1억9천만원이던 금융통화위원들의 연봉은 2억4천2백만원으로 27.4% 인상키로 했다가 하루만에 인상분 가운데 상여금은 지급하지 않기로 방침을 수정했다.
한은은 인상안을 발표하며 "산업은행 총재의 급여가 3억원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중앙은행 임원의 봉급은 지나치게 적은 편"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한은이 제시한 비교대상을 꼼꼼히 따져보면 당장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우선 피트 위원장이 그렇게 받고 싶어하던 그린스펀 의장의 연봉은 지난해 기준으로 16만달러(한화 1억9천만원) 가량.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봉급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새로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의 연봉은 올해 1억4천4백여만원이고 재경부 장관은 7천9백만원의 연봉을 수령한다.
이에 대해 한은은 판공비를 별도로 받는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들과 한은 임원의 연봉을 직접 비교해서는 곤란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판공비를 감안하더라도 한은 총재의 연봉은 고위 공무원들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물가를 비롯해 각종 거시지표가 악화되고 있는 요즘 '물가안정'을 책임진다는 한은의 이같은 해프닝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걱정스럽다.
안재석 경제부 정책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