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HP)의 최고경영자 칼리 피오리나(49)에게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연초에 비즈니스위크지는 그녀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포천지는 5년째 그녀를 '세계 최고의 여성 CEO 1위'로 뽑았다.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수식어를 붙여줬을까. 피오리나는 1980년 AT&T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탁월한 추진력과 천부적인 언어구사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지난 96년에는 AT&T에서 분사한 루슨트테크놀로지를 맡아 과감한 경영전략과 미래지향적인 구조개편으로 주가를 12배나 올렸다. 지난 99년 HP가 '아웃사이더'인 그녀를 CEO로 전격 발탁한 것은 이런 CEO로서의 재능과 업적 때문이다. 그러나 60년 전통의 보수적인 HP에서 피오리나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상당수 비평가들은 그녀가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을 공공연히 내놓았다. 특히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컴팩과의 합병건은 창업주 후손들의 반대에 부딪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벌여야 했다. '세계 최고의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조지 앤더스 지음, 이중순 옮김, 해냄, 1만원)는 HP의 사령탑이 된 피오리나가 컴팩과의 합병과 관련, 창업자의 후손인 월터 휴렛과 위임장 경쟁 및 법정 공방을 벌여 승리한 지난해 9월까지의 이야기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재구성한 책이다. 2001년 9월 피오리나는 경쟁사중 하나인 컴팩과의 인수합병을 결정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업계 최고가 되기 위해 기업의 생존을 건 승부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HP 주식의 대부분을 갖고 있는 휴렛재단과 팩커드재단의 창업자 후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이들중 유일하게 HP의 이사였던 월터 휴렛은 주주들의 의사를 묻는 위임장 경쟁을 하자고 제의했다. 주주들은 피오리나와 이사회에 표를 던졌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월터 휴렛은 소송을 제기했다. '휴렛 대(對) 휴렛팩커드'라는 이름의 이 소송에서 피오리나는 결국 승소, 지난해 9월 합병이 이뤄졌다. 저자는 HP와 컴팩의 합병을 기업간의 싸움이 아니라 경영혁신을 위해 창업자 세대와 치러야 했던 '피오리나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피오리나와 월터 휴렛 등 등장 인물들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