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런티어연구 기수 '日 리켄' ] 일본 도쿄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인 항구도시 요코하마시(가나가와현)에 자리잡은 리켄(RIKEN) 연구소. 요코하마시가 지역경제개발을 위해 무료로 제공한 5.4ha의 매립지에 지난 1998년 들어선 일본 과학기술분야의 간판 종합연구소다. 리켄(理硏)은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를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리켄 요코하마연구소에서 두드러진 실적을 올리고 있는 곳은 게놈과학종합연구센터(Genomic Sciences Center;GSC). 이곳엔 게놈분야 연구원 3백30여명이 몸담고 있다. GSC는 지난해 이화학연구소 전체 연구비(6백86억엔)의 12.2%인 83억엔을 썼다. 리켄 식물과학연구센터, 유전자다형(SNP) 연구센터, 면역.알레르기과학종합연구센터와 더불어 일본내 바이오기술(BT) 연구의 센터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선 출퇴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는 철저하다. 매주 열리는 세미나도 연구평가를 위한 것이다. GSC내 6개 연구집단의 하나인 '인간게놈리서치그룹'에선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세미나가 열린다. 이 세미나는 영어로 진행되며 보통 오후 6시까지 계속된다. 연구책임자이자 도쿄대 의대 교수인 사카키 요시유키 박사가 먼저 유전병 발생과 관련된 염색체의 DNA 염기서열 등 세계 동향을 브리핑한다. 이어 그룹내 3개 팀장과 팀원 등 박사급 연구원 10명이 돌아가면서 지난 1주일간 연구내용을 발표한다. 궁금한 내용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다. 토론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인간게놈리서치그룹의 한 연구원은 "심지어 팀장의 발언에 대해 팀원이 틀렸다고 공박할 정도로 분위기가 자유롭다"며 "모든 연구원은 계약기간인 5년안에 최선의 성과를 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를 받기는 연구책임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카키 박사 등 5명의 그룹장은 1년에 한번씩 와다 아키요시 GSC 소장에게 연구성과를 보고해야 한다. 와다 소장 역시 매년말 방문하는 저명한 외국인 학자들로부터 연구방향에 대한 컨설팅을 받는다. GSC는 설립 5년째인 올해 고바야시 순이치 리켄 이사장으로부터 존폐여부가 걸린 평가를 받게 된다. 평가를 통과해야 게놈 프로젝트가 5년간 연장된다. 리켄 내 다른 연구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네이처 사이언스 등 유명 과학잡지에 논문이 실리지 않는 연구실은 주임연구원(연구실장)이 정년 퇴직하면서 동시에 폐쇄된다는게 이화학연구소의 전통"이라는게 연구원들의 설명이다. '평생직장'이란 메리트가 사라진지도 이미 오래됐다. 2001년에 몸담고 있던 연구자 2천8백31명 가운데 정년을 보장받은 사람은 전체의 23%인 6백51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특정 프로젝트 수행 기간(최장 5년)동안만 고용된다. 연봉은 제각각이지만 GSC의 경우 1천만엔 이상을 받는 연구자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일본 국립대 조교수 연봉은 7백만엔선. 일본 최대.최고 연구기관이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다. 종신 연구원인 '관료적 연구조직'과 계약직 연구원인 '역동적 연구조직'으로 이원화된 것은 지난 86년 프런티어 연구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부터다. 폐쇄적이고 관료적이란 비판을 털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유망한 프로젝트를 제한된 기간안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자금과 인재를 집중 투입한다는 것. 연구과제가 끝나면 조직을 없애는 '일몰형'으로 운영된다. 현재 프런티어 연구시스템은 생체 초분자시스템연구그룹 등 6개 연구그룹 23개 연구실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서 온 방문 연구자가 1천7백21명으로 정식 직원의 3배에 이른다. 개방된 연구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리켄은 국가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는 생명과학의 4대 연구분야인 뇌와 게놈, 재생의학, 면역을 모두 맡고 있다. 전체 연구비의 60% 정도를 BT 분야가 차지하고 있다. 리켄이란 이름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연구성과는 세계적 수준이다. 일본 및 해외에 게재된 학술논문은 지난 96년 8백71건에서 2000년 1천2백31건으로 급증했다. '침팬지 유전체 연구 국제컨소시엄'을 주도하면서 침팬지 게놈을 세계 최초로 분석하는 개가를 올렸다. 뇌종합과학연구센터는 2001년 미국 국립보건원과 함께 세계 최초로 뇌속 식욕전달물질을 발견했다. 리켄은 최근 나노기술(NT)에 도전하고 나섰다. 프런티어연구에서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힘찬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요코하마(일본)=양승득 특파원.최승욱 기자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