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0:20
수정2006.04.03 10:22
포천지의 김우중 전 대우회장 인터뷰는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나흘간 진행됐다.
인터뷰를 한 루이스 크라 기자는 대우가 확장경영을 본격화하던 지난 90년대부터 김 전 회장과 개인적인 교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터뷰에 대해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실장은 "두 사람이 만난 시기는 최근이 아니라 지난해 6월께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 전 실장은 "오래 전에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 인터뷰 형태로 실려 곤혹스럽다"며 "귀국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김 전 회장에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포천지 인터넷판에 게재된 김 전 회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3년간의 도피 생활 동안 뭘 하며 지냈나.
"지난 99년 10월 중국공장을 방문할 당시 해외 도피를 결심했다.
한국을 떠난 직후 심신이 모두 지친 상태였다.
처음 1년간은 한국에 있는 아내와도 연락을 끊고 신문도 일절 보지 않고 지냈다.
그 뒤 유럽과 아프리카의 수단 아시아 등 각 지역을 돌아다녔다.
현재 프랑스의 모 엔지니어링 회사 고문으로 일하고 있으며 자서전도 쓰고 있다."
-한국 검찰이 사기와 횡령 혐의로 수사중인데.
"그들은 나를 사기꾼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나는 결코 부패를 꿈꿔본 적이 없다.
다만 대우 계열사 회계에서 눈속임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한국 기업에 흔히 있는 관행이었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 아니다."
-대우사태에 대한 개인적 책임이 없다는 건가.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야심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 부문에서 과욕을 부렸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하려고 했다."
-자동차 부문에 야심을 품었다는 얘기는.
"다른 자동차 기업들은 10년에서 15년이 걸리는 것을 5년 안에 하려고 했다.
그것이 나의 실수였다.
우리는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시장성도 고려하지 않고 투자했다.
그 당시 자동차를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했어야 했다."
-한국을 떠나게 된 경위는.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 것이 아니다.
99년 당시 정부 고위관리들이 대우 몰락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고 귀국 후 대우자동차를 경영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출국을 설득했기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
김대중 대통령도 직접 전화를 걸어 워크아웃 전에 잠시 떠나 있으라고 말했다."
-대우그룹 처리와 관련,당시 정부관리와 마찰을 빚었는데.
"나는 당시 제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정부 관리들은 대우그룹의 과잉부채와 관련해 모든 문제를 비난했다.
그러나 당시는 금융위기였지 산업위기는 아니었다.
그 같은 비상 상황에서 우리는 단기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정부가 이전의 모든 룰을 바꾼 것이다."
-당시 대우가 직면한 금융위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대우의 자산 대부분이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매각할 수가 없었다.
대규모 사업도 외국 정부와의 공동투자 사업이어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또 프로젝트의 기간이 너무 길어 단기적으로 수익이 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대우의 부채가 증가했다."
-지난 99년 7월 자살을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내가 대우받는 방식에 대해 매우 실망했었다."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아마 5년 안에 대우사태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