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기술혁신과 신산업 육성,투자확대,고급인력 양성 등 성장원천과 직결되는 과제들은 대통령직 인수위가 설정한 10대 국정과제 중 어디에 위치할까. 다름아닌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라는 국정과제에 속해 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어떠할까. 흥미롭게도 산업관련 부처들 사이엔 미묘한 분위기다. 과학기술부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반면,산업정책의 중심이 어디냐를 생각하는 산업자원부로서는 긴장하는 것 같고 정보기술(IT)의 명시적인 부각을 기대했던 정보통신부는 조금 아쉬워하는 느낌이다. '과학기술'용어가 국정과제의 대항목에 들어 간 것도 이례적인 데다 대통령 당선자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소문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일까. 인수위 주변에선 '과학을 위한 정책'에서 '정책을 위한 과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풀이까지 나돈다. 혹자는 차기정부 정책이 영국 노동당 정부가 추진했던 '과학기술을 축으로 한 경제정책'을 연상시킨다고도 한다. 어쩌면 '과학기술 중심론'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정책을 위한 과학'은 한마디로 '과학기술로 무엇을 달성하자'는 얘기다. 경제정책 산업정책 지역정책 동북아정책 등 그 무엇이건 간에 과학기술과 정책목표 사이에 선형적(linear)인 관계가 형성되고,시간적 압박도 가해질 것이다. 과학기술의 이런 대폭적인 역할 확대는 그러나 '과학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경험한 나라에서나 효과적이다. 미국 민주당의 '정책을 위한 과학'만 해도 그만한 과학적 자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패러다임 변화라고 할 것도 없는지 모른다. 언제 '정책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영국 노동당 정부의 '과학기술을 축으로 한 경제정책'도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이미 그 전에 혹은 암묵적으로 환경적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는 또 다른 한 축이 있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외자유치,민영화,산업의 첨단화ㆍ서비스화 수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민주당도 정보 생명기술 등 이노베이션과 성장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그토록 내세웠지만 그 성과는 규제완화,시장원리,외자유치,글로벌화,산업집적화,금융혁신 등과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최근에는 차기정부의 '과학기술 중심론'이 과학기술 예산에 대한 대대적 평가로 이어질 것이란 소문도 나돈다. '평가로 세월 다 보낸다'는 과학기술계에 또 무슨 평가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투자의 75%는 민간기업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민간기업의 역동성 없이는 '과학기술 중심론'도 허구일 수밖에 없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