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홀대받는 외국인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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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0일 '조선족 타운'의 중심가로 불리는 서울 가리봉동 가리봉시장 일대.새해를 맞는 중국동포들로 활기가 넘쳐야 할 이곳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썰렁한 모습이었다.
고향의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기 위해 카드 전화가 있는 곳으로 삼삼오오 모여들던 예년의 세모 풍경도 없어졌다.
최대 상주인구 2만∼3만명에 이르던 동포 숫자가 최근 절반 이하로 줄어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얘기다.
올 3월말로 예정돼 있는 불법체류자 강제출국 시한을 앞두고 이곳에 집중될 단속을 피하려는 동포들이 무더기로 이곳을 떴거나 발길을 끊고 있기 때문이다.
2평 크기의 '벌집'들이 모여있던 이 일대 쪽방촌 거리 곳곳마다 붙어있는 '세 놓음'이란 쪽지는 동포들의 '조선족 타운 엑소더스'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인을 잃은 채 빈방에 나뒹구는 난방기구와 가재도구는 단속을 피하려는 동포들의 사정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곳에서 만난 한 동포는 "입국 때 진 빚도 못 갚았는데 누가 중국에 돌아가겠느냐"며 "한국 정부가 강제추방을 밀어붙이면 가스통을 메고 정부 시설에라도 뛰어들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체류 3년 미만 동포들의 기한을 1년 더 연장하는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놀란 중국 동포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강제 출국시키겠다고 큰소리쳤다가 중소기업들이 공장 돌릴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면 불법 체류를 묵인하는 식으로 대처해온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정책이 이번 강제출국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바뀔지도 의문이다.
25만명의 불법체류 근로자를 올 3월까지 시한을 정해놓고 한꺼번에 내보내려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정책이란 게 노동계의 전반적 시각이다.
어느새 우리 노동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경제적 자신감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마구 다루는 모습은 역사적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위상을 바꿔가는 한국인의 오늘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라는 한 외국언론사 한국 특파원의 충고를 곱씹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정호 사회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