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성장률 등 경제지표가 비교적 양호한데도 북핵, 미국.이라크전쟁 등 불확실성이 커져 경기심리가 위축되는 '심리적인 유동성 함정'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4분기 소비자동향'에 따르면 이달 초 전국 16개 도시의 2천5백9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각종 소비자동향지수(CSI)가 일제히 연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6개월 뒤 경기를 진단하는 '경기전망 CSI'는 95로 전분기보다 20포인트나 급락하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같은 하락폭은 2000년 3.4분기 이후 가장 큰 것이다.

CSI는 기준치인 100보다 낮으면 향후 경제상황이 지금보다 나빠질 것으로 보는 소비자가 호전을 예상하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생활형편 전망 CSI'와 '가계수입 전망 CSI'도 각각 90과 97로 올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생활형편이 나아지거나 가계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소비자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소비지출 계획 CSI'는 106으로 기준치를 웃돌았지만 전분기(116)보다 크게 떨어졌고 지난해 3.4분기(107) 이후 최저치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최근 국내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것은 국내외 환경변화로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내외 투자자들이 미래 불확실성 탓에 심리적으로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란 금리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되는 한계금리 수준까지 낮아져 통화량을 늘려도 소비.투자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요즘의 일본처럼 통화정책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