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형 국가로 가자] (5.끝) 시장형 사회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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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시장경제형 국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 시스템을 시장형(型)으로 바꿔야 한다.'
새 정부가 이끌 '젊은 한국호(號)'에 대한 경제계의 한결같은 당부다.
나라 전체의 시스템이 '시장형'으로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음은 지난 5년간의 한국 경제가 방증한다.
현 정부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많은 부분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출범 초기 '규제 개혁'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지만 '빅딜(대기업간 강제적 사업교환)'과 은행의 가계대출 규제 등 시장 논리를 무시한 개입을 서슴지 않았다.
공기업 민영화와 국유은행 지분매각 등 시장경제체제로의 진전을 위한 몇가지 시도를 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노조 등 한쪽 이해 당사자들의 집단 반발이 비등하면서 '시장 논리'에 입각한 원칙보다는 '여론'과 '국민정서'가 정책방향을 비트는 경우가 잇달았다.
◆ '결과의 우열(優劣)' 인정해야
사회 시스템을 '시장형(型)'으로 바꾸는 첫 걸음은 경쟁에서의 승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풍토를 만드는 일이다.
시장 경쟁의 과정에서는 누구나 대등하게 참여할 수 있게끔 '기회의 평등'이 확립돼야 하지만, 그에 따른 승자를 질시하거나 견제하는 '결과의 평등' 정서는 시장경제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내 기업들에 아직도 연봉제나 성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그릇된 '결과지향 평등주의'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윤병철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경쟁력의 원천인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능력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그런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런 폐단은 정부 정책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경제력 집중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대기업 정책이나 '중소기업과 농어촌은 무조건 보호돼야 한다'는 중소기업 정책과 농어촌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지난 79년 취임 이후 "노력과 재능으로 성공하는 사람이야말로 사회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라며 "기회의 평등은 보장돼야 하지만 결과의 평등에 대한 무리한 요구는 나라를 거덜낼 뿐"이라고 국민들을 설득, 영국병을 치유해 냈다는 점을 되새길 때다.
◆ '인치(人治)' 아닌 '법치(法治)'로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본다는 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점도 시장경제 정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당장 정치권 등 사회 지도층부터 준법정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위법 행위가 드러난 사람이라도 오랫동안 고생하며 한솥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중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김근태 전 민주당 최고위원처럼 정치자금 비리 등에 대한 내부 고발자는 '왕따' 신세가 되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보스에 대한 의리를 지킨 사람이 되레 박수를 받는 풍토도 이젠 도려내야 할 우리 사회의 환부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시장경제체제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투명하고 분명한 룰이 작동해야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는 지도층부터가 자신에게 적용하는 잣대와 남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다른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 집단주의도 근절돼야
정치권 공직사회 기업 학계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학연과 지연 혈연 등에 얽매인 이른바 '패거리 문화'가 선진 사회에 비해 지나치게 강하게 형성돼 있는 점도 시장경제의 걸림돌이다.
배타적 집단주의는 사람들에게 능력보다 연고가 더 중요하다는 식의 잘못된 믿음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의 '독소'다.
배타적 집단주의가 초래하는 또다른 폐해는 집단이기주의의 만연이다.
언제부터인가 정부는 목소리 큰 집단의 요구에 끌려 다닌다는 인상을 주기 시작했고 동시에 우리 사회엔 '떼법'이 또 하나의 법률로 자리잡았다.
특히 의약분업, 그린벨트 해제, 노사갈등, 의료보험 통합 등을 처리하면서 원칙없이 우왕좌왕한 정부의 무능력이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시장형 사회는 물론 시장경제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풍토를 정부 스스로 조성하고 있는 셈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는 시장에 대한 개입이 아닌 게임 규칙을 만들고 공정한 경쟁을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한국이 시장형 사회로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 한경.LG경제硏 공동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