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은 매년 각 국의 국가 경쟁력을 분석한 '세계 경쟁력 연감'을 발표한다. 이 연감을 잘 살펴보면 상위 10개국에 단골로 끼는 몇몇 유럽 강소국(强小國)이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핀란드가 2위에 오른 것을 비롯 룩셈부르크(3위) 네덜란드(4위) 덴마크(6위) 스위스(7위) 등 5개국이 10위권에 포진했다. 인구가 적고 국토가 작은데다 천연자원도 빈약하지만 미국 일본 독일 등 강대국에 밀리지 않을 만큼 강력한 경쟁력을 뽐낸다. 이들 국가가 겉으로는 한국보다 나아보이지 않는 데도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비결은 뭘까. 그 해답은 '개방형 경제'에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늘 부대끼며 배운 국가생존의 비결이다. 중소 국가들은 좋든 싫든 국제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개방형 경제구조를 갖추는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유리하다. 유럽의 강소국들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개방적 사고방식을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 3국은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적극 참여해 유럽 통합이라는 대세에 편승했다. 유럽 강소국들의 개방성은 해외 투자나 해외 경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벨기에는 외국인들로부터 받아들인 투자(2000년말 잔존금액 기준)가 국내총생산(GDP)의 72.9%에 달한다. 스위스는 GDP의 95.1%(2000년말 누계 기준)에 달하는 자산을 해외에 직접 투자 형태로 내보냈다. 소규모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외부시장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외국에서 받아들인 투자금액과 해외로 나간 직접 투자금액이 모두 GDP의 10%를 밑돌고 있다. 유럽 강소국들은 협소한 국내시장과 취약한 제조업 기반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을 배출했다. 핀란드의 노키아, 스웨덴의 에릭슨, 네덜란드의 필립스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대목은 유럽 강소국들에는 개방적 사회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 사이에 개방 경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다른 나라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만큼 국제화 감각을 갖춘 인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례로 네덜란드에는 모국어와 영어 등 2∼3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시장개방을 앞세워 번영을 구가하는 유럽 강소국들이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자원이 없는 나라가 생존하는 방법은 개방형 경제모델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것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로 달려나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다국적기업을 데려와 국내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21세기 세계 경제는 예전보다 훨씬 더 글로벌화되고 투명해질 것이다. 이러한 국제 경제환경은 오히려 한국과 같은 중소 국가에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건은 지속성과 체질화다. 견실한 개방형 경제는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정책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네덜란드의 상인정신이나 스위스의 금융신용이 수백년에 걸친 개방화의 결과로 정착됐음을 되새겨봐야 할 때다. 강선구 < LG경제硏 부연구위원 sgkang@lger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