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업무도우미? 훼방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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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대"의 파워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이들의 발길을 투표장으로 돌린 것도,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내라며 수만의 군중을 거리로 몰아낸 것도 바로 인터넷이었다.
특히 "메신저(인터넷 채팅 프로그램)"는 인터넷을 통한 각종 캠페인을 이끌어 내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떠올랐다.
미군 장갑차 사건 논란이 한창일 때 메신저 사용자들은 대화명 앞에 삼베모양(▩)과 하얀 리본(▷◁)을 달아 추모 분위기를 한껏 달구었고 대선 기간동안에는 기표봉을 상징하는 "㉦"을 달아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선거 캠페인 기간동안 메신저를 통해 직접 지지자들과 대화하기도 해 "디지털 대통령"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처럼 메신저의 위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짧은 기간동안 사용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자의 75%정도가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는 직장인의 경우 메신저 사용 비율이 더 높다.
메신저를 켜고 끄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끝내는 직장인도 많다.
이처럼 사무실을 강타한 "메신저 열풍"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분분하다.
그 편리함과 유용성이 업무의 효율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시도때도 없는 채팅은 도리어 업무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 황기섭 씨,교보증권 대치동지점 남현우 대리,LG상사 업무팀 황성혜 대리,사이람 인터넷사업팀 박도은 씨 등 직장인 네명으로부터 메신저 사용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남현우=1분1초를 다퉈야하는 증권가에서는 메신저 사용이 필수예요.
애널리스트,고객들과 자료 공유하는데 아주 유용하죠.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온라인 증권매체보다도 훨씬 정보 전달이 빨라요.
최근에는 메신저로 전송된 긴급파일을 통해 단타매매에서 대박을 터뜨린 적도 있어요.
메신저의 위력을 실감했었죠.
40~50대 고객 분들에겐 직접 찾아가 컴퓨터에 메신저 프로그램을 깔아드리고 팝업창이 뜨면 꼭 보라고 말씀드리죠.
이젠 메신저 없는 삶은 상상조차 못할 정도예요.
황성혜=회사 홈페이지 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 웹에이전시들과 수시로 연락을 해야돼요.
전에는 일일이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야했지만 요즘은 메신저로 바로 연락을 하니까 시간과 비용 모두 절약돼요.
회사 홈페이지에 과도한 부하가 걸려 다운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바로 아웃소싱 업체의 담당자에게 메신저로 연락을 해서 원격으로 수리를 한 경우도 있어요.
박도은=회사에서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메신저를 깔도록 했어요.
저 역시 처음에는 매우 편리하다고 느꼈지만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서 계속 말을 걸어올 때가 많아 이제는 "메신저 공해"까지 느끼고 있어요.
황기섭=사무실에서도 보면 젊은 동료들은 대부분 쓰고 있죠.
하지만 저는 업무에 꼭 필요하지는 않는 것 같아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사실 메신저를 업무상으로보다는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남들이 다 하니까 유행처럼 따라하는 메신저 만능주의도 문제예요.
아무리 기능이 탁월하다하더라도 과용하다보면 삶의 족쇄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남현우=메신저를 개인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스스로 자제할 수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생일축하해요","메리 크리스마스" 등 축하메시지를 메신저로 받으면 각박한 직장생활의 윤활유가 되기도 하죠.
박도은=메신저가 확산되면서 사무실이 꼭 도서관 같아졌어요.
다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대화를 하다보니 동료들간에 대화가 단절되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끈끈함이 적어졌다고나 할까요.
메신저를 통해 불법자료가 유포되거나 비밀파일이 공유되는 경우도 문제예요.
한번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파일이 유포돼 컴퓨터가 고장난 적도 있어요.
황기섭=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메신저가 결코 달갑지는 않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메신저가 사무실에 만연된 것은 한국 기업의 비효율적인 업무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실제 업무량에 비해 공식적인 근무시간이 길기 때문에 불필요한 근무 시간이 많은거죠.
결국 킬링 타임용으로 메신저가 확산된 것 같아요.
황성혜=실질적으로 효율적인 업무에 도움을 줄 때도 많아요.
저희 부서는 두 층으로 나뉘어져있는데 메신저를 사용하면서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윗층 아래층을 왔다갔다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게 됐답니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회사입장에서 봐서도 메신저 사용이 문제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박도은=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어요.
회사 서버에 채팅 내용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간혹 회사측에서 그걸 추적해 불이익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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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신저 중독증 자가진단법 ]
컴퓨터를 켜자마자 메신저부터 접속한다.
특별한 이유없이 수시로 메신저를 켜서 대화상대로 등록된 친구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대화명을 바꾸기 위해 한참을 고심한다.
메신저를 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누군가 자신을 찾지 않을까 늘 불안하다.
근무 시간은 물론이고 퇴근한 뒤에도 집에서 메신저를 켜놔야 마음이 놓인다.
하루 평균 3시간 넘게 친구들과 메신저로 잡담을 나눈다.
등록돼 있는 대화상대가 30명이 넘는다.
친한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그 친구에게 혹시 무슨 잘못을 한 게 아닐까 마음에 걸린다.
파란색 팝업창이 뜨는 걸 봐야 맘이 놓인다.
"자리비움" "식사중" "다른용무중" "통화중" 등 자신의 상태를 꼬박꼬박 대화상대에게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