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 나라의 공정거래법은 경쟁촉진법으로서의 일반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공정거래법 제1조는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당연히 공정거래법의 과제이지만 경제력 집중 방지와 국민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목적으로 삼는 것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경쟁이란 정의상 승자와 패자를 차별화하는 메커니즘이므로 경쟁의 결과가 균형적일 수는 없으며 바로 이 때문에 자유로운 경쟁이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균형적인 발전이라는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집착은 경쟁을 저해할 수 있고,경쟁의 어느 일방에 대한 정부의 지원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즉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개념은 그 의미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경제력 집중 그 자체를 문제시하는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흔히 경제력 집중에 대해 막연한 우려감을 갖기도 하지만 경제력 집중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월한 경제력을 남용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하는 경우는 당연히 공정거래법의 규제 대상이지만 이를 이유로 하여 경제력 집중 그 자체를 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기업이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독과점적인 지위를 획득했다면 그것은 경쟁자에 비해 보다 우월한 경쟁력의 결과로 이해돼야 한다. 따라서 경쟁의 결과로서의 경제력 집중 그 자체를 억제하는 것은 경쟁의 승자에 대한 부적절한 규제인 동시에 패자에 대한 부당한 보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이 보호해야 하는 것은 어느 한 편의 경쟁자가 아니라 경쟁 그 자체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공정거래법의 혼란은 대기업집단 관련 조항들에도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경우 1988년 최초로 도입될 때에는 경제력 집중 억제를 정책목표로 하고 있었으며,98년 폐지됐다가 99년 재도입되면서 수익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확장 등 왜곡된 지배구조의 시정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것처럼 경제력 집중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나아가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공정거래법의 본령에서 벗어난다. 따라서 성격이 다른 두 가지 목표가 혼재돼 있는 현행 공정거래법은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경쟁촉진법으로서의 성격에 보다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islim@lger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