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9일 이라크가 제출한 대량살상무기 보고서에 대해 유엔 무장해제 결의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선언함에 따라 전쟁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이미 보고서의 오류를 유엔 결의의 '중대 위반'으로 간주,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위반 선언을 계기로 사실상 전쟁의 길이 열린 것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전망을 종합해볼 때 미국이 당장 전쟁을 서두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이라크의 보고서가 유엔 결의 1441호의 조건에 부합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면서 중대위반을 선언했지만 미 정부 관계자들은 적어도 내년 1월말이나 2월초까지는 전쟁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 것으로 전하고 있다. 또 영국의 잭 스트로 외무장관도 이날 이라크의 유엔 결의 이행 실패를 지적하면서도 이것이 이라크 전쟁으로 불가피하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미국이 전쟁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하게 국제여론의 지지를 확보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먼저 미국은 "사냥을 위한 확실한 증거"를 찾기위해 무기사찰단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라크 과학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작업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파월장관은 이에 대해 이라크 밖의 장소에서 이라크의 무기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인터뷰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과학자들의 증언이 성사되면 이라크 정부를 옭죌 수 있는 보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며, 반대의 경우에도 이라크 정부의 비협조라는 명분을 축적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19일 인터넷판에서 미국 정부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미국정부가 평화적으로 무장해제할 마지막 기회를 날렸다고 지적하면서도 당장 전쟁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타임은 전쟁의 준비와 후세인 제거후의 이라크 재건문제 등이 주요 고려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전쟁을 시작하고 전쟁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충분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준비할 것이 많다는 것. 미국 정부 소식통들은 대략 내년 1월말을 전후한 시점을 상정해 미군이 5만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걸프지역에 파견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현재 이미 배치된 5만명을 포함하면 10만명 정도의 정규군이 포진하는 셈이다. 여기에 영국군 4만명정도와 다른 연합국 전력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규모 병력이 전투에 동원되는 것이니 만큼 원활한 전투수행을 위해 준비해야할 사안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유엔 안보리에서 전쟁을 승인할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도 사전에 충분한 정지작업을 벌여야한다. 이와 함께 미국내 여론의 추이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타임과 CNN이 1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민 54%는 유엔 무기사찰단이 대량살상무기 생산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반면 38%는 이를 반대했고 8%는 미정이라고 응답, 미국내 여론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특히 전체의 3분의 2에 달하는 약 66%의 응답자는 유엔이나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생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 이라크 침공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전쟁에 따른 위험요소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 리어드 마이어스 전 합참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와의 전쟁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라고 강조한 점은 이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대량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와 전쟁을 감행할 경우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다양한 요소를 구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라크 전쟁의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파월장관은 회견에서 "세계가 영원히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라크가 시간을 끌기위한 작전을 계속 시도할 경우, 유엔내 여건이 성숙하고, 미국내 여론이 개선될 경우 부시 행정부가 군사작전을 전격적으로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대체로 군사작전 개시시점으로 가장 빠른 것은 내년 1월말부터 시작되는 마지막 주와 2월 초 사이가 거론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무기사찰단을 이끌고 있는 한스 블릭스 유엔 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 위원장이 내년 1월27일 대량살상무기 실태와 이라크의 사찰협력을 평가하는 실질적인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일정을 감안할 때 이 시기를 전후한 군사작전 계획이 마련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문제는 이라크의 태도이다. 이라크 정부 지도부는 이미 최악의 상황인 전쟁을 단단히 대비하고 있는 분위기다.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이미 비상 식료품 등 전시물자가 일반 가정에 분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아랍 주변국들은 이라크 정부가 유엔 사찰단의 활동에 성실한 자세로 협조해 전쟁을 피해야한다고 이라크측을 설득하고 있다. 미국측에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지 말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전쟁을 결심하는 것은 미국이지만 전쟁촉발의 시기를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이라크측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