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유럽대륙에 새로운 지도가 빠른 속도로 그려지고 있다.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3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EU 정상회의가 끝난 뒤 "서유럽의 국가 블록에 머물렀던 EU가 이젠 명실상부하게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연합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선언했다. 이 회의에서 EU 15개국은 체코 폴란드 등 다른 10개국(인구 9천만명)의 가입을 최종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최대 군사동맹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에스토니아 등 이 지역의 7개국에 문호를 개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뜨거운 감자'인 터키의 EU 가입문제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당초 오는 2005년 7월을 터키의 가입협상 개시일로 제시했던 EU는 협상시작 시기를 2004년 12월로 앞당겼다. 이슬람국가인 터키는 이미 나토에 가입했으며, 유럽의 '톱 시민클럽'에 들어오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터키의 EU 가입을 놓고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첫째, 지리적 영토적 문제다. 이는 EU가 과연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느냐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이대로 가면 유라시아대륙에 위치한 러시아도 언젠가는 EU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지중해연안에 있는 모로코도 가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터키가 EU에 가입할 수 있다면 이웃국가인 이라크도 가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둘째, 경제적 문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EU가 초국가 형태보다는 느슨한 자유무역지대로 발전하길 바라고 있다. 즉 보수적 영국부터 사회주의 국가였던 폴란드까지 정치와 군사분야의 통합을 바라지 않고 있다. EU가 계속 영역을 확대해 빈국에서 부국까지 다양한 국가들을 포용하게 되면 역내 국가들이 이익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 회원국 국민들의 복지혜택 축소 등 생활수준이 현재보다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셋째, 종교적 문화적 문제다.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EU 가입문제는 하나의 '딜레마'였다. 일부 국가들은 터키가 이란 시리아 등 정통 이슬람 국가들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점 때문에 터키의 EU 가입을 반대해 왔다. 하지만 이슬람국가를 가입시켜 반기독교 사상을 가진 나라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넷째,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다. EU는 그동안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에 보다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라고 터키에 요구해왔다. 또 반체제 인사들과 죄수들에 대한 고문 폐지 등 국내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고 군의 정치개입을 종식시킬 것을 요구했다. 다섯째, 군사 전략적 문제다. 유럽과 중동을 잇는 중간에 위치한 터키는 예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나토 회원국인 미국과 영국으로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터키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일부 국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EU 정상회의에서 터키의 가입협상시기를 앞당긴 것도 이들 국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한 때 유럽대륙을 주름잡았던 오스만투르크의 후예인 터키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는 등 시민 사회를 건설하며,EU가입 채비를 하고 있다. 무슬림 국가인 터키가 서구동맹에 가입한다면 그동안 서로 극한적인 대립으로 점철해왔던 세계의 양대 문명이 화해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정리=권순철 기자 ikee@hankyung.com ----------------------------------------------------------------- ◇ 이 글은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실린 'Turkey belongs in Europe'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