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1:25
수정2006.04.03 01:28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말은 현상과 본질의 일체를 강조하는 불교 사상의 핵심어다.
윤제균 감독의 동명 영화는 이 귀절을 "여색이나 남색에 빠지는 일은 덧없다(空)"란 뜻으로 차용한 섹스코미디다.
대학생들의 성과 사랑을 노골적으로 그린 이 영화는 "한국판 아메리칸파이"이자 "몽정기의 대학생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메리칸파이"보다 한국적인 정서가 진하게 배어나고 "몽정기"에 비해 민망함이 덜 느껴지도록 교묘하게 포장했다.
화끈한 섹스,강력한 폭소,한 방울의 눈물까지 강력한 흥행코드들이 배치된 이 영화는 시사회장에서 관객들을 박장대소로 이끌었다.
이 영화는 남자 차력부와 여자 에어로빅 동아리의 맞대결을 골간으로 성과 사랑에 눈뜨는 과정을 유머와 위트로 꾸려간다.
차력과 에어로빅은 이성을 유혹하는 수단이다.
에어로빅하는 여대생들은 육체의 곡선을 과시하며 남학생들의 성욕을 자극한다.
남자 차력사들은 나무몽둥이 매질에도,깨진 맥주병위에 누워도 끄덕없는 건강미로 여학생들의 시선을 붙든다.
이마로 마늘을 찧는 차력술은 차력을 코미디영역으로 확장한 대목이다.
"차력의 기본은 인내와 깡"이란 외침은 사실 "사랑의 기술"과 닿아 있다.
유혹의 기술로 무장한 젊은 대학생들에게 섹스는 거부할 수 없는 탐닉거리다.
노처녀의 적극적인 육탄공세에 무너지는 소심한 남성,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밀고 당긴끝에 침대로 직행하는 남녀 등은 "내키는 대로" 젊음을 소비하는 신세대의 초상이다.
이처럼 커플 대부분이 벗고 정사신을 갖는다는 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한국의 보통 코미디물과 달리 여주인공 하지원(이은효역)도 과감히 벗었다.
베드신에서 그녀의 상대역이 남주인공 임창정(장은식역)이 아니라는 점도 이채롭다.
이 대목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신세대의 섹스관에 경종을 울린다.
순간의 실수로 임신중절의 고통이 찾아 왔을때 비로소 주인공들은 "색즉시공"과 사랑의 참뜻을 깨닫는다.
임신중절이란 소재는 "세계적인 낙태국가"란 오명을 지닌 한국적 현실이 투영돼 있다.
주인공이 태아살해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자신의 육체훼손에 더욱 우려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극중 이은효와 장은식이 사랑을 이룩하기까지 세 차례나 병원신세를 지는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하다.
두 번은 이은효의 구타와 그 유사행위에 따른 것이고 나머지 한 번은 임신중절로 입원한 그녀를 장은식이 간호한다.
병원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다.
남성이 철저히 피학의 대상으로 설정되는 남녀관계는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와 그녀의 관계와 흡사하다.
평론가 심영섭씨는 "만약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남성을 피학적 대상으로 그린 남녀관계가 강력한 흥행코드중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참뜻이란 "무거운" 주제는 폭소를 타고 전해온다.
인터넷 음란물을 보며 자위하는 도중 프로그램이 다운되거나 정액을 튀겨 먹고,장난치다가 쥐를 삼키거나 발정제로 인해 발기한 남성을 처리못해 안절부절하는 등 기발한 착상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저속한 욕과 행위들은 "천박한 코미디"란 비난을 감내해야 할 업보다.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