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20층 난초홀.


외부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오후 2시 정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날은 그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경련 산하 유통산업위원회 주최로 "유통산업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의 유통컨퍼런스가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위원장을 맡은 이래 처음 열리는 큰 행사에서의 인사말을 통해 그는 유통산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유통산업은 국내총생산의 9.9%와 고용인구의 19.1%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지만 위상이 너무 낮다.정부정책에서도 제조업에 밀리기 일쑤다.유통산업은 미래 성장산업으로 재조명받아야 한다"는 요지였다.


맨 앞자리에 자리잡은 신 부회장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꼼짝하지 않으면서 발표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발표내용도 일일이 기록했다.


주제발표와 토론이 모두 끝난 오후 7시.


19층 리셉션장에서 신 부회장은 유통산업위원회 멤버들과 악수를 나눈 후 도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신 부회장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어머니도 일본인이다.


미국 콜롬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MBA)를 딸 때와 노무라증권 런던지사에 다닐 때를 빼고는 일본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일본과 한국을 일정한 주기로 오간다.


가족도 일본에 있다.


그에게 있어 일본은 삶의 밑바탕인 셈이다.


지난 97년 그룹 부회장에 선임되면서 한국 기업인으로의 변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신 부회장에게는 일본식 생활스타일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에 대한 깎듯한 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겸손함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외부 인사는 물론이고 그룹 조직안의 임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신격호 회장에 대한 몸낮춤은 지극하다.


"아버님께선 아직 왕성하게 업무를 보고 계십니다.언제나 그랬듯이 점포 방문도 활발하게 하시지요."


정식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하는 것도 아버지를 의식한 태도라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사업 이야기가 나오자 신 부회장의 목소리는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그는 최근 TGI프라이데이스,동양카드,미도파 등의 인수작업을 주도하면서 사업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신 부회장은 "현대석유화학 인수작업은 잘 되고 있느냐"고 묻자 "컨소시엄을 구성한 LG측과 역할분담을 할 계획"이라며 "잘 될 것"이라고 힘을 주었다.


대표이사를 맡아 직접 관장하고 있는 편의점과 인터넷쇼핑몰 사업에 대해서도 "자신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인터넷쇼핑몰인 롯데닷컴은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시각이 있다고 하자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세븐일레븐이 다소 밀리는 듯 보이는건 전략적 차이에 불과하다.점포수에 연연하지 않고 도시락이나 김밥과 같은 전략상품을 강화해 이익을 남긴다는게 우리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롯데닷컴은 경제권을 쥔 여성고객이 60%에 달해 국내 최고의 인터넷쇼핑몰이 될 수 있단다.


또 다른 사업인 슈퍼체인점 "레몬"도 지금은 점포수가 6개에 불과하지만 내년에 30개 가까이로 늘어나면 흑자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할인점인 롯데마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인정했다.


그는 지난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한국 롯데에 몸을 담았으며 그룹 기조실 부사장,비서실 부사장,그룹 부회장 등을 거치며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런만큼 후계구도와 관련해 그에게 쏠리는 시선은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한국롯데의 대권이 신 부회장으로 기울어지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내부에선 이미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신 부회장이 기업 인수나 신규 투자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도 후계구도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이들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현재와 미래의 연속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글=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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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55년 일본 도쿄생

<>77년 일본 아오야마대 졸업

<>80년 미국 콜롬비아대 경영대학원 졸업

<>81년 일본 노무라증권 입사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

<>95년 롯데그룹 기조실 부사장

<>97년 롯데그룹 부회장

<>99년 코리아세븐 대표이사 부회장

<>2000년 롯데닷컴 대표이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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