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엔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며 박스권 상단으로 지목돼 온 125엔에 육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향후 130엔도 '무리없는 수준'이라는 전망도 가세되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5일 달러/엔 환율은 오전 8시 30분 현재 124.50/54엔에서 호가되는 등 124.50 안팎에서 숨을 고르며 향후 방향을 타진하고 있다. 지난주만해도 121∼122엔의 횡보를 거듭하던 달러/엔 환율은 지난 2일 뉴욕 외환시장을 기점으로 상승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일 한때 125.01엔까지 올라선 바 있는 달러/엔은 지난 3일 도쿄에서 잠시 조정을 거치는 모습을 보였다가 재반등, 124.80엔대로 올라선 상태. 4주중 최고수준이다. 달러/엔의 상승, 엔화 약세의 배경에는 투자패턴, 정책, 계절적 요인이 함께 복합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본 경제에 대한 국제 투자자들의 우려가 다시 증폭됐고 엔화 약세를 유도해 일본경제를 회복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도 더해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호전 기미를 보이고 연말을 맞은 12월이라는 계절성까지 연관돼 있다는 지적이다. ◆ 일본 정부의 속내, '엔화 약세' = 일본 정부의 '엔화 약세' 의지가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금융부실과 디플레이션 등 산적한 현안 문제의 해결책이자 경제회복의 돌파구로서 유일하게 '엔화 약세' 필요성이 수면 위로 재부상하고 있는 것. 특히 최근 엔화 약세의 심화는 시오카와 마사주로 일본 재무상이 "적정환율은 150~160엔"이라는 발언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달러당 150∼160엔이라면 엔화는 현재 수준에서 20% 이상 절하된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의 최고 경제정책을 주관하는 재무상이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한 데다 일본 정부의 개입도 임박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달러 매수, 엔화 매도 공세를 펼쳤다. 물론 국제외환시장에서 파장이 확산되자 다음날 시오카와 재무상은 자신의 발언을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구매력 지수에 따라 조정된다면 거래될 수 있는 예로 든 것"이라고 언급, 전면 부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일본 경제의 취약성을 감안할 때 엔화 약세라는 정책방향을 거두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시중은행의 한 이종통화 딜러는 "시오카와 재무상의 해명은 속도조절 차원에 불과하다"며 "결국 연말 평가손 문제나 디플레 우려 등을 감안하면 엔 약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내세운 디플레 대책이 미흡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통화가치 조정을 통해 인플레를 유발시키고 수출 확대를 통해 경기부양을 도모하겠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경기 부진과 금융부실처리 문제가 산적한 상황이고 통화 재정정책 모두 여력이 떨어진 여건에서 '엔 약세'가 유일한 정책수단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엔화 약세 효과는 수출경쟁력 강화와 함께 수입물가 상승을 통한 디플레이션 억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가 달러화에 대해 10% 떨어지면 수출은 1%, 소비자물가는 0.3%, 국내총생산(GDP)은 0.4%가 상승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장은 시오카와 재무상이 언급한 150∼160엔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나 최근 5∼6년간 이같은 수준에 달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정책적 환율 목표치는 최소한 현재보다 높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 美日간 경기 '비대칭', 되살아나는 미국 경제 = 최근 미국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은 악화되고 있다. 연말께 다시 경기침체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10월중 산업생산은 수출부진으로 전달보다 0.3% 감소, 2개월째 줄었다. 10월 실업률도 5.5%로 전달보다 0.1%포인트 상승하며 2차대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기업들 사정은 말이 아니다. 올들어 10월까지 도산한 기업은 모두 1만6,231개로 연말까지 도산 기업은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의 1만9,164개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일본경제는 4/4분기 중에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다케나카 헤이조 일본 금융상 겸 경제재정상은 "원칙적으로 정부는 일본의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불안 요소들이 남아있고 회복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의 3/4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은 4.0%를 기록하는 등 이중침체(double dip)에 빠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잦아들고 있다. '더 이상 추락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한 이종통화 딜러는 "미국의 경제지표가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며 호전되고 있는 반면 경제의 펀더멘털은 그렇지 않다"며 "달러/엔 125엔 정도에서 수출업체 매물과 옵션도 있으나 이 선을 뚫을 경우 연말까지 127엔도 충분하고 내년에 130엔까지도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달러/엔 상승세 '지속 가능성' = 달러/엔과 관련한 시장의 핵심은 일본의 경제구조개혁 문제와 연관돼 있다. 시행 계획이 발표된 이후 아직 구조개혁을 본격화하지 못한 상태여서 시장의 개혁지연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중장기적으로 엔화에 대해 '뇌관'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이종통화 딜러는 "핵심은 일본의 구조개혁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며 "일본 정부의 구두개입 등으로 엔화가 완만한 약세를 보이다가 구조개혁이 본격화되면 그 충격이 크게 가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국제금융시장에서 연말연초에 변동성이 커지는 점도 엔화 약세의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에도 달러/엔이 120엔대에서 130엔대로 급등한 경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연말 결산을 앞두고 시장이 얇다는 점이 변동성 확대의 요인이다. 일본 정부도 이같은 시장 여건을 감안해 구두개입을 단행함으로써 달러/엔 상승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앞의 딜러는 "연말 결산으로 거래를 하지 않는 참가자들이 늘고 시장이 얇아질수록 일본 정부가 바라는 엔 약세가 용이하다"며 "계절성으로 인한 포지션 변동이 커져 달러/엔의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한경닷컴 이준수·이기석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