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가 24세 때 일이다. 보험회사에서 증권분석사로 일하던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작은 은행의 파트너 비서로 스카우트됐다. 어느 날 파트너가 불러 "일을 못한다"고 야단을 쳤다. 억울해 하는 드러커에게 그가 말했다. "증권분석사 시절처럼 일하는 게 잘못이다.새로운 직무에서 효과적인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라." 드러커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일곱가지 경험 중 하나로 이 일을 소개하며 과거에 유능했던 사람이 갑자기 무능해지는 이유를 '예전의 성공 방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정말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부적절한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회사 사회에 부장감 임원감 사장감이란 재목 분류가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새로운 직급으로 승진하면 과거에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비결을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그 직급에 걸맞은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고 새로운 성공논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김대중 현 대통령의 실정도 따지고 보면 이 궤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들은 존경받던 야당 지도자 시절의 성공과 1등 대통령 후보로서의 성공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떨쳐버렸어야 했다.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한 사람들이 떨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과거'다. '대기업의 부장까지 지냈던 것'은 자랑도 밑천도 못 된다. 혹 된다고 해도 남들이 평가해 줄 일이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미련일 뿐이다. 새벽부터 몸으로 때울 수도 있어야 하고,시장통에서 물건값을 놓고 싸울 줄도 알아야 하고,대기업 말단 사원에게도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한다. 사업에 필요하다면 말이다. 기업이라고 다를 게 없다. 경제위기 때 망한 기업들은 주로 그 이전의 방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했던 기업들이다. 돈 되는 것도 팔아야 할 판에,빚덩이 사업체를 늘려 대출을 더 일으키려 했던 회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회사들은 망했다.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경제위기 당시와 비교해선 구조조정기를 벗어나 성장잠재력 확충기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러니 구조조정기의 성공 경험도 잊을 수 있어야 한다. 남아도는 인재를 '싼값'에 채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도 인건비가 부담이 돼 눈치만 본다. 새 기회가 있어도 남들이 먼저 뛰어들기 전까지는 구경만 한다. 위기를 그런 방식으로 넘겼으니 그 방법이 제일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다. 위험회피(risk averse)라는 생존법에 더해 위험감수(risk taking)라는 기업 본연의 정신을 가다듬을 때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