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회고-잊을수 없는 이야기] 김광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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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있는데 국그릇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살았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동안 믿고 따라준 직원들의 얼굴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현대스위스신용금고가 흑자도산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2000년 10월23일.
"이용호 게이트(동방금고)"가 터졌다.
젊은 벤처사업가가 금고를 인수,고객들이 맡긴 돈을 마음대로 사용한 것이다.
"한심한 젊은이구만.감히 고객의 돈에 손을 대다니..."
하지만 이 사건이 우리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다.
정확히 한달 후,이번엔 "진승현 게이트(열린금고)"가 터졌다.
잇딴 사고로 금고업계에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들려왔다.
하지만 자신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금고업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알짜 금고"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12월에 들어서면서 동아금고가 문을 닫았다.
우려했던 예금인출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며칠 뒤 "잘나가던" 해동금고도 무너졌다.
해동금고가 문을 닫은 다음날,영업상무의 다급한 보고가 이어졌다.
"고객들이 돈을 빼가고 있습니다."
피말리는 "유동성 확보 전쟁"이 이어졌다.
직원들은 팀을 이뤄 고객들에게 "예금 출금을 자제해달라"는 전화를 걸었다.
나와 임원들은 빠져나간 예금을 메우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인출사태를 대비,확보해놓은 돈은 전달 4백억원에서 40억원으로 줄어 들었다.
임원들과 비상회의를 하고 있던 저녁,홍보팀장이 숨을 헐떡이며 신문 한 부를 들고 달려왔다.
"불법영업 일삼은 H금고도 문 닫을 가능성 높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기사를 읽어보니 마치 우리회사를 염두에 두고 쓴 기사같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급한 마음에 신문사로 달려가 솔직하게 말했다.
"H금고가 우리 회사라면 차라리 현대스위스금고라고 쓰십시요.하지만 확인해보고 우리 회사가 아니라면 독자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그 기사를 고쳐주십시요."
신문사 담당부장은 "알았으니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일단 회사로 돌아와 전직원들과 비상회의를 열었다.
"우리 회사는 이제까지 금융사로서의 윤리를 지키고 고객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만약 내일 예금인출사태가 벌어져 문을 닫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과 회사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마십시요.여러분과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두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신문부터 찾았다.
눈을 의심했다.
문제의 신문기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식탁에 앉아 있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내렸다.
고마웠다.
날 믿고 따라준 직원들과 우리 회사를 믿고 돈을 맡겨준 고객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악몽의 2000년 겨울이 지났다.
새해가 되고 예금자보호법이 시행되자 예금 행렬이 줄을 이었다.
대출영업도 호조를 보여 지난해에만 1백38억원의 순익을 기록,업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도 2000년 겨울의 일을 생각하며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사업환경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위기상황이 와도 원칙을 지키면서 "정면돌파"하면 된다는 확신도 갖게 됐다.
정리=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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