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서 부회장과 신윤식 사장의 커리어는 비슷한 점이 많다. 나이로는 일단 신 사장(66)이 박 부회장(63)보다 3살위다. 신 사장은 서울대 사학과,박 부회장은 외교학과를 나왔다. 학창시절에 마주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신 사장은 1963년 행정고시 1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박 부회장은 68년 6회로 합격했다. 신 사장은 이후 체신부에서만 27년을 근무하며 차관까지 올랐다. 데이콤 하나로통신 사장 경력까지 포함하면 정보통신산업에서만 40년의 인생을 보낸 셈이다. 신 사장은 체신부 근무 시절,"제비"로 우체국 CI(기업이미지통합)를 도입했으며 "매월 말일은 편지쓰는 날"을 만드는 등 아이디어뱅크로 이름을 날렸다. 하나로통신 사장으로 와서도 신 사장의 도전은 계속됐다. 1999년 KT가 ISDN(종합정보통신망)으로 가느냐,ADSL로 가느냐를 놓고 고민할 때 신 사장은 ADSL로 선수를 쳤다. 국내 초고속인터넷 산업이 이처럼 발전한 것은 순전히 신 사장 "덕"이라고 KT 사람들도 얘기할 정도다. 박 부회장은 경제기획원,상공부를 거쳐 통상산업부 차관을 지냈다. 관료시절에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다. 자본재산업 육성정책,수입다변화 정책 폐지,발전설비 일원화 해제,탄광지역 카지노 설립 등 굵직한 현안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이후 민간 CEO로 옷을 갈아입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LG상사 대표이사를 거쳤다. "가방끈"은 신 사장이 행정학 박사로 박 부회장(경제학 석사)보다 조금 길다. 두 사람 다 독실한 크리스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