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일방적 이라크 군사공격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카타르 정부의 입장에 중대한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셰이크 하마드 빈 자심 알-타니 카타르 외무장관은 미군기지 제공 문제와 관련,12,13일 잇따라 공개 석상에서 '신중히 검토' '조건부 허용' 방침을 밝히고 나섰다. 하마드 장관은 13일 CNN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으로부터 기지 사용 요청을 직접받지 않았다"며 "그러나 미국이 직접 요청해 올 경우 이를 논의한 뒤 우리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을 우방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마드 장관은 전날 미 브루킹스 연구소 초청 연설과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도 미국이 기지 제공을 요청하면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드 장관의 발언은 카타르가 결국은 자국내 기지를 미국의 이라크 공격 거점으로 제공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의 발언은 미국이 대이라크 전쟁을 지휘할 중부사령부를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카타르로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한지 하루만에 나온 것이어서 양국간 사전 교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마드 장관은 그러나 지난달 26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만나 "이라크에 대한 어떠한 군사 공격에도 반대하며 무장해제 문제는 유엔의 틀 안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그는 이라크에도 유엔 결의를 받아들이고 무기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함으로써 역내 긴장 해소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카타르의 입장 변화는 최근들어 아랍 일부 국가들 가운데 이라크의 정책을 비판하고, 유엔 무기사찰단 입국을 허용토록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와 요르단 등 미국의 전통적 우방들은 미국의 군사선택이 불가피한 현실로 굳어지면서 이라크를 지지하는 아랍연대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아랍아동기금 회장이며 인도단체 지원 아랍.걸프 프로그램 회장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탈랄 빈 압둘 아지즈 왕자는 13일 미국은 결국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며 자신들이 원하는 아랍 역내 군사기지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를 외치는 아랍 국가들의 태도는 역내 형제국들과 국내 민심을 의식한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카타르는 역내 국가들 가운데 이라크와 역사적으로 가장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1991년 걸프전이 끝난뒤 가장 먼저 이라크와 관계를 재개했다. 또 지난 7월에는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이어 역내에서 3번째로 이라크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한 카타르의 이라크 지지연대 이탈 조짐은 다른 아랍국가들의 연쇄 반응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