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사진)이 도요타덴소배와 명인전에서 잇달아 승전보를 올리며 세계최강자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 9단은 지난 6일 일본기원에서 벌어진 제1기 도요타덴소배 세계왕좌전 준결승에서 중국의 위빈 9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초대 우승컵을 노리게 됐다. 조훈현 유창혁 이세돌 등이 거센 중국바람에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신 가운데 이 9단이 홀로 남아 한국바둑의 체면을 지킨 셈이다. 이 9단과 결승에서 맞붙을 상대는 중국의 창하오 9단. 창하오는 그동안 다섯차례나 결승무대에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두 기사가 세계대회의 패권을 다투는 것은 이번이 세번째. 98년 후지쓰배와 2000년 잉창치배에서 모두 이 9단이 이겨 우승컵을 안았다. 둘간 통산전적에서도 이 9단이 16승4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우승상금 3천만엔과 부상으로 도요타승용차 1대가 주어지는 결승전은 단판승부로 내년 1월 개최될 예정이다. 이 9단은 지난 9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제33기 명인전 도전5번기 첫판에서 도전자 안조영 7단에 1백81수만에 흑불계승을 거둬 타이틀 수성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이날 대국에서 이 9단은 초반부터 착실히 실리를 챙기며 상대를 압박해 나갔다. 실리부족을 느낀 안 7단은 하변에서 중앙에 이르는 대가로 맞서며 형세를 반전시키려고 했지만 이 9단의 완벽한 수읽기에 하변이 무너지면서 돌을 거두고 말았다. 안 7단은 이날 패배로 이 9단과의 상대전적에서 9전 전패를 기록했다. 안 7단은 이 9단과의 대국에서 3차례나 반집으로 져 이번 도전기에선 팽팽한 승부가 예상됐지만 세계최강자의 높은 벽을 다시 한번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목진석 이세돌 등 비슷한 또래의 라이벌들이 이 9단을 상대로 심심치 않게 승점을 올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안 7단이 연패의 사슬을 끊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바둑계는 전망하고 있다. 도전 제2국은 17일 같은 장소에서 속개된다. 이날 인터넷 해설을 맡은 서봉수 9단은 "이창호의 바둑은 완전군장을 하고 뜨거운 사막을 끝없이 가는 스타일로 상대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버티는 질기고도 독한 바둑이다. 이창호를 꺾으려면 최소한 이 9단이 걸을 때 걷고 뛸 때 같이 뛸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