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채권단을 다그쳐 하이닉스반도체 매각을 재추진하고 있다. 하이닉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이강원 행장은 유럽출장중에 미국 마이크론측과 접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채권단은 일단 매각과 경영정상화를 병행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하이닉스측은 정부와 채권단이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핵심인력과 거래처들이 이탈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이닉스 처리의 주요변수가 될 세계 IT경기는 침체에서 탈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반도체시황이 바닥은 벗어났지만 가격회복세는 더디다. 하이닉스 처리방안이 다시 주목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걸림돌 많은 매각안=지난번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 때보다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마이크론의 CEO인 스티브 애플턴 사장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은 입장이라는 해석이 많다. 한차례 CEO자리에서 밀려난 적이 있는 그는 하이닉스 인수협상에 두 번 실패하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란 게 현지 상황에 정통한 이들의 설명이다. 마이크론이 이미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데다 2백56메가제품과 DDR(더블데이터레이트) 등 현 주력제품 개발에 뒤처진 책임도 있다. 한때 40달러에 육박했던 마이크론 주가는 17달러 안팎까지 하락,하이닉스 인수대금을 지급할 여력도 줄었다. 미국 정부의 담합혐의에 대한 조사도 인수협상의 걸림돌 중 하나다. 한국측 문제도 이에 못지 않다. 하이닉스의 핵심인력들은 마이크론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강해져 협상재개시 이탈할 우려가 있다고 하이닉스 관계자들은 말한다. 또 채권단 내부에서도 마이크론에 매각을 강행할 경우 손실을 어떻게 나눠 부담할 것이냐를 둘러싼 이견이 여전히 남아있다. ◆경영정상화 가능성=하이닉스 내부에서는 부채탕감과 채무만기연장을 통해 시간을 번 뒤 경기가 회복되면 자금을 축적하면서 본격 투자에 나서 경쟁력을 되찾는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경쟁업체인 마이크론 인피니언 등도 원가부담과 기술개발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과도한 차입금부담만 해소되면 이들과 경쟁해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마이크론에 매각할 때 적용하는 만큼만 지원한다면 하이닉스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경종민 KAIST 전자전산학과 교수와 전병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본부장 등의 견해다. 실제 하이닉스측은 금융비용을 제외한 총 영업원가는 인피니언의 81%,마이크론의 92%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석포 우리증권 애널리스트는 "12인치 웨이퍼 생산라인 등의 투자를 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평가했다. 신규 투자여력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이닉스는 상·하반기에 각각 3천억원가량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최소한의 투자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제3의 방안은 없나=일부에서 삼성전자 위탁경영론 LG인수론 등이 아이디어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하이닉스와 관련되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어 삼성전자 위탁론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LG도 하이닉스 인수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채권단이 대대적인 부채탕감과 신디케이트론제공 등의 조건을 제공한다면 인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김성택·차병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