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간기업 연구소 1만개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민간기업연구소는 지난 7월말 9천7백98개를 기록한데 이어연말까지 1만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민간기업연구소는 지난 1981년 과학기술부의 인가를 받아 46개가 첫선을 보였다. 10여년만에 1천개를 넘어선데 이어 지난 2000년엔 5천개를 돌파했다. 또다시 2년만에 두배나 급속 증가한 셈이다. 이는 1999년 하반기부터 불기 시작한 "벤처열풍"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전체 기업연구소에서 중소.벤처기업연구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98년 78.7%에서 1999년 83.4%로, 2000년엔 88.7%로,2001년엔 다시 90.6%로 증가했다. 올 7월말엔 91.3%에 이르렀다. 민간기업 연구소는 한국의 연구개발(R&D) 및 기술발전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측면에서는 그 효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민간기업연구소의 허상을 짚어본다. ◇병역특례와 세제지원 노린다=기업이 산기협에 연구소를 등록하면 병역특례와 세제혜택을 받을 수있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세제혜택도 도움이 되지만 대기업에 비해 우수한 인력을 얻기 힘든 중소·벤처기업에 병역특례제도는 양질의 인력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기업연구소로 등록하기 위해선 물적·인적 조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물적 조건으로는 독립된 연구소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인적 조건은 기업 규모에 따라 다르다. 대기업은 전담 연구인력 10명 이상,중소기업은 5명 이상,창업 5년 이내의벤처기업은 2명 이상,창업한 지 5년이 지난 벤처기업은 5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대기업 연구원을 그만두고 IT(정보기술) 벤처기업을 창업한 한 사장은 "이같은 기업연구소 설립조건은 매우 완화된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어느 기업이나 연구소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벤처기업들이 연구소를 세우거나 유지할 만한 능력이 없으면서도 기획이나 마케팅 인력까지 전담 연구인력으로 등록해 연구소를 설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학·연 협력을 외면한다=기술개발을 위해선 정부출연연구소,다른 기업연구소,대학 등과의 산·학·연 협력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를 통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연구소들은 기초기술보다는 응요기술쪽에 주력,산·학·연 협력을 외면하기 일쑤다. 특히 연구계획서를 만들고 인건비를 벌기 위해 뛰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급 두뇌들이 떠난다=수원의 삼성전자 통신연구소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1998년부터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관련 고급 인력이 대거 빠져나갔다. 삼성전자는 엔지니어 유출을 막기 위해 내부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벤처기업들과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내부단속을 위해 엔지니어들에게 퇴직 이후 1년간 동종업계에 취업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기도 했다. 삼성전자에서 '애니콜 신화'를 만들었던 한 임원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옮기면서 삼성전자와 법정소송을 치르기도 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다. 대기업 연구소의 상당수 우수 연구인력들이 IMF를 전후로 벤처기업과 해외로 빠져나갔다. LG화학 기술연구원의 바이오텍 연구소장을 그만두고 2000년에 바이오 벤처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창업한 조중명 사장은 "당장 눈앞의 성과에만 매달리는 대기업에서 미래기술을 연구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며 "고급 두뇌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선 대기업 연구소들이 획기적인 보상 시스템을 제시하고 연구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 < 협찬 한국산업기술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