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통일동산 근처에 "프로방스"라는 양식당이 있다. 통일동산 입구에서도 안쪽으로 꽤 들어간 곳에 있지만 주차장이 널찍한데다 분위기가 좋고 그릇과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가게와 빵집도 있어 경기도 일산은 물론 서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얼마 전 이곳에 갔다. 모처럼의 가족나들이인 만큼 큰맘 먹고 코스요리를 시켰다. 샐러드에 이어 스파게티까지 한곳에 주고 나눠 먹으라고 할 때까지는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메인디시까지 한꺼번에 가져오길래 "이것도 덜어 먹어요" 했더니 "우리집은 원래 그래요"한다. 원래 그렇다니.명색이 코스요리인데. 베란다화분의 허브 향기와 한강이 보이는 전망에 취해 음식맛을 탓하지 않던 나는 솔직히 당황했다. 식당의 본질은 음식이고 따라서 맛과 서비스가 첫째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림하우스"에 갈 걸 싶기도 했다. 림하우스는 일산의 식당촌인 애니골에 있는 곳으로 맛과 서비스 가격 분위기 모두 괜찮았다. 그뒤 우연히 찾은(백숙집이 만원이어서 대신 들어간) 애니골의 양식당 "아트리움"은 다시 한번 프로방스를 생각나게 했다. 스파게티와 돈가스의 맛은 보통이었지만 실내 분위기는 우아했고,종업원은 피클이 떨어지자 마자 말하기 전에 갖다 주고 후식용 홍차를 예쁜 차주전자에 담겨 나온 까닭이다. 입맛과 취향은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날 일산 일대 양식당은 "림하우스가 1등,아트리움이 2등" 하고 점수를 매겼다. 양식당만 천차만별이랴.한식의 경우는 더하다. 1인당 몇 만원씩 받는 한정식집에서 냉장고에 둬 딱딱해진 청포묵을 그냥 썰어놓는가하면 국물있는 음식이랍시고 걸쭉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한꺼번에 내놓는다. 찌개나 국의 경우 한가지가 걸쭉하면 하나는 맑은 걸 올리는 상차림의 기본도 무시한 채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니 회식을 해야 하거나 가족모임을 주관하려면 식당 고르기가 쉽지 않다. 맛과 가격이 괜찮으면 분위기 서비스 그릇은 포기해야 하고 분위기가 좋다 싶으면 값이 만만치 않다. 그나마 맛있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소문이나 어디어디에 소개된 집이라는 간판만 믿고 들어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도 흔하다. 음식점은 많다. 그러나 정작 다시 가고 싶은 곳을 발견하기는 실로 어렵다. 그 결과일까. 무수히 생기는 식당 중 정작 성공하는 곳은 극히 적다고 한다. 프랜차이즈의 상당수는 인테리어 업자 좋은 일만 시킨다고도 한다. 실제 지난해 우후죽순처럼 솟았던 찜닭집 가운데 지금까지 영업하는 곳은 몇 곳 안된다. 최근 외신은 이탈리아 농림부가 내년부터 각국의 이탈리아음식점에 조사원을 파견, 대표적인 이탈리아요리를 내놓는지, 이탈리아제 올리브유와 파스타를 쓰는지 등을 검검해 증서를 주는 '인증보증제도'를 도입하려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식당의 수준도 유지하고 식자재 수출도 늘리려는 의도같다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도 한국표준협회가 식당부문 서비스 품질인증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증이 무슨 소용이랴. 맛있는 음식을 기분좋게 먹게 하려는 마음과 실천이 중요하지. 맛과 서비스 모두 신경쓰고 문앞에 '준비중'과 영업시간 안내판이라도 내거는 식당이 많아지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 "박성희의 괜찮은 수다"는 다음 주(13일)부터 금요일자 위크엔드면에 옮겨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