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日 감세안, 묘수인가 악수인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달초 일본 정부의 감세안이 확정된다.
최종안이 나와봐야 알 수 있겠지만 당초 1조엔 규모로 구상되던 감세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각국들은 경기부양 수단으로 감세안을 유행처럼 추진하고 있다.
감세정책의 동조화 현상이다.
지난주 발표된 세제개정안에서 우리나라도 조세감면책을 매력적인 경기조절 수단으로 보고 있음이 확인됐다.
물론 일본이 경기부양을 위해 감세를 추진하려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된다.
이미 정부지출을 전제로 한 재정정책은 재정적자가 국민소득(GDP)의 11%,국가채무가 1백32%로 악화된 상황에서 더이상 추진하기 어렵다.
통화정책도 이미 오래 전에 무력화됐다.
금리가 '제로' 수준인 데다 일본 국민과 기업인들은 미래를 불확실하게 느낌에 따라 금리인하에 따른 총수요 증가가 미약하다.
올해초 추진했던 엔저 정책도 자본유출에 따른 역자산 효과와 제조업 공동화 현상과 같은 부작용으로 4월 중순 이후 포기한 상태다.
최근 들어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정책마저 후퇴됐다.
이에 실망감을 느낀 외국인들이 일본을 속속 떠나고 있다.
요즘 국제금융시장에서 '사요나라 니폰'이란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들어 일본에서 외국기업들의 철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미 스위스 금융지주회사인 그레딧 스위스그룹,독일의 드레스너뱅크,스웨덴의 볼보가 도쿄 증시를 떠났고 출범초 기대감이 높았던 나스닥 재팬도 철수방침을 밝혔다.
채권시장도 외국인들이 외면,사무라이본드 시장의 경우 자금조달 창구로서의 기능이 크게 악화됐다.
현 시점에서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은 감세안이 경기부양 수단으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공급중시 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의 상징과도 같은 세율과 세수간의 관계를 그린 래퍼곡선(Laffer curve)에서 세율이 최적조세율을 넘어 경제주체들이 부담을 느끼는 비정상적인 지대(abnormal zone)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금이 감면되면 생산과 소비의욕이 고취돼 경기가 부양되고 세수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
보는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현재 일본은 세율이 높아 소비와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일본 국민들의 소비와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은 측면이 더 강하다.
이 상황에서 감세를 추진할 경우 경기부양 효과보다는 후유증이 더 크게 우려된다.
무엇보다 감세로 세수가 줄어들면 이미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일본의 재정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감세로 늘어난 일본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정부가 의도한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저축으로 이어질 경우 일본경제 전체로 봐서는 총수요가 줄어들어 경기가 더욱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금리체계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감세로 재정수지가 악화될 경우 궁극적으로는 국채발행을 통해 늘어난 재정적자를 보전해야 한다.
이 경우 정책금리는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시중금리는 크게 오르기(국채발행 증가→국채가격 하락→국채수익률 상승)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일본 뿐 아니라 지금처럼 전세계적으로 재정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감세안을 추진하는 모든 국가에 해당된다.
결국 일본이 이런 높은 위험을 안고 있는 감세안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그만큼 일본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더욱이 일본은 이달말 반기결산을 앞두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유동성 부족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달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일본의 감세안 추진에 따른 논란과 엔화 자금회수 문제,'9월 위기설' 등이 증시 주변을 중심으로 화두(話頭)로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