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초 프랑스계 할인점 까르푸에 또 다시 칼을 빼들었다. 이번엔 단순한 '군기잡기' 차원이 아니라 한국 사법기관의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며 검찰에 고발키로 의결했다. 물론 고발에 앞서 과징금 7억5천여만원도 부과했다. 까르푸가 이처럼 공정위에 호되게 당하는 이유는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명절선물 배달사고 관련 비용을 납품업체에 일방적으로 떠넘긴 사실이 적발된 것. 공정위에 따르면 까르푸는 지난해 추석 선물 배달을 영세업체에 맡긴 탓에 물건 변질 및 배달 지연 사고를 냈다. 결국 고객들에게 1억3천여만원을 물어줘야 했다. 사고를 낸 택배업체가 영세해 돈을 물어낼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까르푸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포기했다. 대신 1백12개 납품업체로부터 1억2천9백75만원을 거둬들였다. 공정위가 까르푸에 과징금을 물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까르푸는 99년 이후 매년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받는 등 상습적인 법 위반 행위로 정평이 나 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과 할인점을 운영하는 그랜드백화점. 창업주 김만진 회장(58)은 30년 전인 1972년 서울 홍제동 유진상가에서 슈퍼마켓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대형 점포 6개를 거느린 유통 대기업을 일궈냈다. 그는 점포 건설이나 매각을 둘러싸고 끈질기게 협상을 벌여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서울 대치동 본점을 팔기로 롯데백화점과 본계약을 맺고도 1년여간 실랑이 끝에 2백50억원을 더 받아낸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김 회장은 최근 대우건설을 상대로 서울 등촌동 점포 공사비가 과다하게 지급됐다며 공사비 일부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윤리경영이 유통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까르푸와 그랜드의 사례는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 행태라는 지적이 많다. 유통업체들이 거래업체와 윈-윈 관계를 맺기 위해 공정한 룰과 시스템을 갖추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은 대외용 구호가 결코 아니다. 협력회사나 거래처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지 않고서는 포화상태에 달한 유통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세계가 전자문서교환(EDI)을 통해 협력회사들이 손쉽게 거래를 틀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자기 비용으로 개발해 운영하고 홈플러스가 매년 많은 돈을 들여 협력업체들과의 모임을 정례화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윤리경영은 곧 기업의 경쟁력이다.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