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빼놓고 KAIST의 역사를 얘기할 수 없다. 특히 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은 설립자인 박정희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70년 4월6일 과학기술처는 박 대통령에게 한국과학원 설립 계획을 보고했다. 문교부장관이 기존 대학들의 입장을 대변, 과학원 설립의 부당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를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이듬해 2월 설립자로 추대된 박 대통령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수요가 늘어난 과학기술 인력을 우리 힘으로 길러내겠다"며 과학원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이공계 대학 졸업생들이 해외유학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두뇌유출(Brain Drain) 현상'을 막기 위해 박 대통령은 과학원 진학생들에게 여러가지 특혜를 줬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병역혜택이었다. 반공이념을 내건 박정희 정부에서 약3주 정도의 군사훈련만으로 병역을 면제해준 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박 대통령은 또 과학원 학생들의 학비를 전액 면제해 주었고 매월 2만∼3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학생 전원에게 기숙사도 제공했다. 박 대통령은 과학원을 과학기술을 통해 산업발전에 이바지할 국가 엘리트를 키우는 '과학기술 사관학교'로 중시했던 것이다. 1981년 1월5일엔 전두환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 KAIST의 설립자가 됐다. 한국과학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통합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발족시킨 것. 1980년 등장한 신군부가 추진한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에 대한 개혁작업의 하나로 추진된 통합과정에서 전 대통령은 가장 인지도가 높은 과학원과 KIST를 합친 KAIST의 설립자가 됐다.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진 통치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전 대통령은 1980년대 들어 가속화된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고급 과학기술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1984년 말 한국과학기술대학(KIT)을 세웠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석사장교 제도가 도입돼 일반 대학의 대학원 학생들에게도 병역혜택을 줬다. 1970년대 병역특혜를 겨냥해 과학기술원을 선택했던 서울대 등 우수한 이공계 졸업생들이 모교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도 KIT의 설립 배경이 됐다. 1985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원이라는 간판 아래 과학원, 과학기술연구소, KIT 등 세 기관이 모인 '한지붕 세가족 시대'가 시작됐다. KAIST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접어들어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는다.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통합된 과학원과 과학기술연구소가 분리된 것. 과학기술연구소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영어 명칭은 예전대로 KIST)으로 독립했다. 과학원과 KIT는 그대로 남아 현재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