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빼내는 것은 현행법상 절도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정보화 사회에서 갈수록 그 중요도가 커지고 있는 컴퓨터 저장정보의 자산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3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1일 기업체의 컴퓨터에 저장된 설계도면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H사 연구개발부장 지모씨(42)와 공범 김모씨(51)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훔친 대상이 유체물(有體物)이나 전기에너지처럼 관리 가능한 동력(動力) 등의 재물이어야 하는데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 자체는 재물에 해당하지 않아 정보를 훔친 행위를 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런 정보를 복사하거나 출력했다고 해서 피해자측에서 볼 때 정보가 없어지거나 이용 가능성이 감소되는 것도 아니어서 이같은 행위가 절도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정보절도 행위에 대해 처벌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세대 박상기 교수는 "정보가 일반 재물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만큼 개인의 정보보호를 실정법이 포괄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씨는 퇴직 임원인 김씨의 요구에 따라 2000년 10월 회사 연구개발실에서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된 직물원단 고무코팅시스템 설계도면을 출력해 빼낸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었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