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전시총리 윈스턴 처칠은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영웅 샤를 드골을 불신해 연합군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계획을 알리지않고 비밀로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1일 공개된 영국 공공기록청 문서에 따르면 처칠은 드와이트 D.아이젠아워 유럽주둔 연합군 사령관에게 서한을 보내 상륙작전을 취소할 수 없는 시점인 작전 개시 직전 영국에서 망명 프랑스위원회 사령관인 드골에게 상륙작전에 관해 통고 할 것을 제의했다. 처칠은 이 서한에서 "프랑스위원회에는 상륙작전 개시 전에 통고하는 것이 긴요하며 통고를 하는 안전한 장소는 이곳(런던)이고 그래야만 위원회를 우리들 영향력 아래 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처칠은 드골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인 1944년 6월 6일 전날에 도착할 것 같다면서 "드골이 외국에 전보를 보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상륙작전에 관해 통고해줄 것"을 제의했다. 그는 "드골이 이 제의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24시간이나 48시간 동안 드골 전보를 지체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기록문서 공개로 뒤에 프랑스 대통령이 된 드골과 그를 배제시키려 했던 연합군 지도자들과의 험악한 관계가 더욱 선명하게 밝혀지게 됐다. 지난달 발표된 다른 문서에서 처칠은 드골을 "유럽 평화에 대한 최대 위험 요소들중 하나"라고 지칭했다. 자칭 자유프랑스군 지도자인 드골은 다루기 까다롭고 오만하며 고집불통으로 간주됐다. 처칠은 드골이 1940년 6월 프랑스를 탈출한 뒤 영국이 베푼 지원에 별달리 감사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었으며 프랭크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드골이 건방지다고 생각했었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1944년 6월 6일로 예정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계획에서 드골을 배제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프랑스 국내외에서 드골에 대한 대규모 지원과 프랑스 통일에서 드골이 담당할 결정적인 역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골은 전후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대통령이 됐으며 또한 다음 세대 정치인들에게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그는 1970년 사망했다. (런던 AFP=연합뉴스) hs@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