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는 후한의 장군 마원이 조카들에게 훈계를 하면서 남겼다는 화호유구(畵虎類狗)란 말이 나온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린다'는 말이다.


서툰 솜씨로 일을 잘못 처리하면 결과가 원래 목적했던 바와 어긋난다는 뜻이다.


10일 오후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5층 회의실에서 열린 재래시장 활성화 간담회에 참석한 상인대표들은 정부가 마련한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과 시행령'을 보면서 저마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주 여수 제천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상인 대표들은 우선 "정부의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이 재건축과 재개발 지원에 치우쳐 있어 상인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토지나 건물 소유주만 이익을 볼 수 있는 건물 신축보다는 주차장이나 화장실 같은 환경개선 작업이 훨씬 더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원 전국재래시장번영회장은 "재건축된 상가의 경우 보증금이 평당 1천만원을 넘어 기존 상인들은 사실상 재입점하기가 불가능하다"며 "상가가 완공될 때까지 5억원을 지원해 대체시장을 조성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일침을 놓았다.


한 지자체의 시장담당 공무원도 "관할 구역에서 재건축된 12개 주상복합건물이 모두 실패했다"면서 "재래시장은 반드시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감어린 관광자원이란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법은 시장 재개발과 재건축이 쉽도록 하는 각종 '특별조치'를 담는데 역점을 뒀지만 환경개선이나 경영 마인드를 높이는 방안도 골고루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생존의 소프트웨어는 상인들이 주도하는 것이고 정부는 하드웨어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이 법에서는 시장활성화 관련 13개 조항 가운데 9개 조항을 시장 재개발과 재건축에 할애하고 있다.


임대보증금과 월세가 치솟는 부작용을 낳은 상가임대차보호법도 화호유구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표를 의식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담은 법이라야 생명력이 있는 법이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