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중심의 뉴 이코노미(신경제)는 아직 거품 붕괴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D램가격 하락, 나스닥침체, 재고증가와 수요감소 등 악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현명해졌고 강인해졌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수익모델 창출로 서서히 다음 호황을 준비하고 있다. 신경제의 오늘과 내일을 실리콘밸리 현지취재를 통해 시리즈로 소개한다. --------------------------------------------------------------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평범한 진리를 입에 담았다. 사상 유례없는 호황과 바로 그 뒤를 찾아온 불황속에서 실리콘밸리의 '전사'들은 "대학에서 배웠던 경제학과 경영학 원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외쳤다. 고성장 저실업 저물가로 대변되는 '신경제(New Economy)'가 무한히 지속될 것이란 기대는 지난 몇년간 거품 붕괴 과정에서 '신기루'였음을 실감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산짓 센굽타 교수(경영학)는 "닷컴 거품이 붕괴되면서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는데 모두들 '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현장에서 적용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반성했다"고 말했다. 하임 멘델슨 스탠퍼드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경제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라며 "다만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원가를 절감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보기술(IT)이 등장했던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닷컴 기업으로의 외도(캘리코 커머스의 사장)를 끝내고 최근 전자기기 설계자동화 소프트웨어 회사인 코웨어로 돌아온 앨런 나우만 사장은 "이익나는 회사, 지속적으로 매출이 늘어나는 회사, 고객에게 진짜 가치를 제공하는 회사, 보다 나은 제품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 예상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회사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식료품업체인 웹밴은 신경제의 환상이 초래한 결과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이 회사는 인터넷 확산으로 사람들이 오프라인 상점 대신 싸고 편리한 온라인으로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매할 것이라는 '환상'아래 사업계획을 짰다.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어 미국 전역에 물류창고를 만들고 배송망도 갖췄다. 하지만 끝내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투자비와 현금흐름을 우선하는 관리회계의 기본 원칙에 충실했더라면 이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비해 시장의 생리를 잘 아는 오프라인업체들은 인터넷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슈퍼마켓체인 테스코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세이프웨이와 합작으로 그로서리웍스닷컴을 설립했다. 고객들은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상으로 손쉽게 물건을 살 수 있다. 하임 멘델슨 교수는 "때로는 오프라인에서,때로는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싶은 게 사람들의 속성"이라며 "고객 기호에 맞게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객 지갑을 꺼내게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수익 위주의 사업모델을 바꾸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고객들에게 특별한 가치를 제공하지 않고서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 또한 확산됐다. 예스메일은 당초 e메일 마케팅을 하는 회사였지만 스팸(쓰레기)메일에 이골이 난 네티즌이 늘어나면서 e메일 마케팅의 노하우를 살린 소프트웨어 판매 기업으로 변신했다. 자연어 검색 시스템회사였던 에스크지브스닷컴은 초기 일반 소비자 대상의 영업을 해왔으나 최근에는 기업 대상 솔루션 판매 회사로 변모했다. 인터넷 리스팅 서비스업체인 룩스마트의 에반 톤리 사장은 "인터넷 광고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안주했더라면 결코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며 "닷컴 거품의 붕괴 과정에서 천당과 지옥을 한꺼번에 경험한 직원들은 더욱 강해졌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정건수 특파원.김남국 기자 ks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