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설 곳 잃는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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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매일 독설이 날아온다.
심판들이 개최국인 한국에 매수됐고,한국은 실력이 아닌 돈으로 승리를 얻었다고 떠든다.
우승후보로 꼽히다 축구 변방인 'Korea'에 망신당한 심정이 이해는 간다.
그러나 너무 치졸하다.
축구는 유독 내셔널리즘이 다른 스포츠보다 강하다.
국가간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스포츠는 축구밖에 없다.
내셔널리즘이 강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부족국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배부족이 피지배부족의 무덤을 파서 두개골을 꺼내 발로 차고 다니면서 지배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했다는 데서 축구의 특별한 내셔널리즘이 발원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축구에서도 내셔널리즘이라는 좁은 울타리의 빗장이 벗겨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각국 대표선수단에서 순수혈통으로만 구성된 팀은 거의 없다.
귀화하거나 이민 2세로 태어난 선수,이국의 감독 등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편협한 내셔널리즘은 분명 퇴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히딩크라는 벽안의 감독은 한국축구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월드컵 첫승에 목말라하던 한국민에게 기적처럼 4강진출의 감격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월드컵의 근간은 내셔널리즘이다.
경기자체가 국가대항전이라는 점에서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내셔널리즘은 국가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이어서는 안된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치졸한 시비를 거는 일은 왜곡된 내셔널리즘의 한 단면이다.
한국의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을 내민다.
나이도 성별도 뛰어넘어 함께 기뻐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용광로속에서 모든 것들은 함께 녹아 섞인다.
그러나 이 모든 감동에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덧옷이 입혀져서는 안된다.
한국은 지구촌속에 존재하고,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한국민의 힘은 더 크게 발휘될 수 있다.
승리의 감흥에만 젖는다면,이번 월드컵의 의미를 우리는 잃어버릴 수도 있다.
조주현 월드컵취재단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