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은 지난 3월부터 시작한 기획시리즈 '신용카드가 한국을 바꾼다'를 마무리하면서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 좌담회를 가졌다. 신용카드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의 당위성과 카드산업의 발전 방향을 놓고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학영 한경 경제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노태식 금융감독원 국장을 비롯해 서영경 YMCA 팀장, 이명식 상명대 교수, 이보우 여신금융협회 상무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국내 신용카드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선 카드사, 정부,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교육에 힘써야 한다"며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 참석자 > 노태식 <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장 > 서영경 < YMCA 시민중계실팀장 > 이명식 <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 > 이보우 < 여신금융협회 상무 > 이학영 < 사회:경제부장 > -------------------------------------------------------------- △ 사회 =정부가 현금서비스 규제, 소비자보호 강화, 직불카드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5.23 신용카드 종합대책'을 내놓은지도 한 달이 지났다. 5.23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 서영경 팀장 =5.23 대책을 통해 정부가 카드시장에 직접 개입한 것은 신용카드로 인한 부작용이 워낙 커졌기 때문으로 본다. 정부는 5.23 대책을 통해 회원 신용등급별 수수료 공시를 강화토록 했다. 이는 카드사들의 '눈속임용' 수수료 인하를 막기 위한 조치다. 보상한도책임제를 도입한 것도 잘한 일이다. 하지만 직불카드 활성화 유도 정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직불카드 활성화를 위해선 소득공제 혜택 확대보다는 직불카드 가맹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 더 급하다. △ 이보우 상무 =5.23 대책이 장기적으로 카드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카드산업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이명식 교수 =제도적으로 카드시장을 개선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카드문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신용카드를 둘러싼 대부분의 부작용은 근본적으로 신용이 낮은 개인에게 과다한 신용한도가 주어지면서 발생했다. 따라서 공급자(카드사)뿐 아니라 수요자(카드회원)에 대한 문제도 함께 짚어봐야 한다. △ 노태식 국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카드회사의 영업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많다. 이번 종합대책을 만들 때 염두에 둔 첫번째 원칙은 '시장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규제책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 사회 =5.23 대책을 통해 정부는 신용카드 대출서비스(현금서비스+카드론) 비중을 전체 카드사용액의 50% 이내로 제한키로 했다. 이런 규제가 과연 불가피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 서 팀장 =카드회사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연 20%가 넘는 고리의 현금서비스 위주 영업을 고집해 왔다. 신규 회사의 카드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금서비스 한도에 대한 정부 규제는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 △ 이 상무 =현금서비스 총액 규제는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조치다. 과다한 현금서비스 사용을 막자는게 정부 취지라고 본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는 두 가지 부작용을 낳는다. 첫째 현금서비스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금융상품인데 이를 규제하면 급전 소요자들을 사채시장으로 내모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는 카드회사가 자기채권(현금서비스)을 회수하면서 생겨날 수 있는 신용대란 문제다. △ 이 교수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금융소비시장이 양극화됐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은행권으로, 저신용자는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나게 됐다. 카드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신용이 취약한 사람들을 흡수했고, 그것이 현금서비스 시장의 팽창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을 무시한 채 대출서비스와 결제서비스 이용액 비중을 50 대 50으로 맞추라는 감독당국의 정책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특히 한국은 소액급전대출 업무를 취급하는 금융회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상호저축은행과 캐피털 등이 이 업무를 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더구나 저축은행 등 신용관리능력이 카드회사보다 미흡한 금융회사에는 대출서비스를 제한하지 않으면서 카드사만 규제하는 것은 '정책의 형평성'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 노 국장 =신용카드를 이용한 급전대출이 너무도 쉽다보니 과다하게 대출받아서 투기성 자금과 과소비 자금으로 쓰는 예가 많다. 신용카드의 주기능은 누가 뭐래도 신용결제 기능이다. 부수업무인 대출서비스 비중은 줄이는게 바람직하다. △ 사회 =카드사가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이유는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를 통해 고리대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적정한 현금서비스 이자율은 얼마라고 보나. △ 서 팀장 =조달금리(약 7%)에 비해 현금서비스 이자율(약 23%)이 지나치게 높다. 카드사들은 조달금리가 치솟았던 외환위기 당시 현금서비스 이자율을 즉각 인상했다. 하지만 최근 1년간 조달금리가 낮아져 왔는데도 현금서비스 이자율 인하에는 소극적이다. △ 이 상무 =카드사별로 이자율을 공시하는 등 금리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향후 시장의 자율경쟁에 따라 현금서비스 이자율은 적정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다. △ 이 교수 =현금서비스는 연체 위험이 높은 신용대출 상품임을 감안하면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이자율을 어느 정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정부의 직접적인 금리 규제는 시장흐름에 역행한다. 카드회사들이 자체적인 신용평가 시스템을 통해 회원의 신용도에 따라 적정수준의 이자율을 결정하도록 하는게 옳다. △ 노 국장 =정부가 소득공제와 복권제 등을 통해 카드사용을 장려한 덕분에 카드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카드사들은 회사 수익의 일정 부분을 국민에게 환원하려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 사회 =신용카드가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범이라는 비판이 있다. 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 서 팀장 =신용불량자 해법은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개인 워크아웃제도를 도입해 채무상환을 유예해 주거나 연체이자를 탕감해 주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악용될 소지가 많다. 전 금융권이 금융소비자의 모든 금융정보를 공유하는 크레딧뷰로(CB) 서비스를 조속히 실시하는 등 예방적 대책이 필요하다. 돈에 대한 가치 및 과소비를 줄이기 위한 금융소비자 교육도 절실하다. △ 이 상무 =공급자인 카드사와 수요자인 회원이 모두 변해야 한다. 카드회원 스스로 개인의 신용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 이 교수 =개인 워크아웃제도는 자칫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수의 선량한 채무상환자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고의적인 개인파산, 연체이자 감면신청이 잇따르는 등 신용사회 확립에 '재앙적 상황'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카드로 인한 개인파산 대상자는 우선 금융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이후 사회복지기관에서 개인파산자를 대상으로 올바른 신용관리법을 가르친 뒤 이들에게 직불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개인파산자들이 직불카드를 별 문제 없이 사용하면 다시 소액의 신용한도를 주고 금융시장에 재진입시키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 노 국장 =카드회사는 회원의 건전한 카드사용을 돕도록 교육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카드는 '제2의 현금'이라는 인식 아래 본인의 신용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정리=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