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와 증시가 흔들리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난기류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미 주가와 달러화 가치의 약세현상이 뚜렷하다. 아르헨티나 사태에서 비롯된 개도국 금융위기도 인접국가로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9.11 테러 이후 어렵게 회복된 세계경기의 재둔화(double dip)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의 양상이 주목된다. ◆ 미국중시 단극체제 약화 =이번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미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감 상실과 미국경제의 위상약화에서 비롯됐다. 한동안 글로벌 스탠더드로 각광받았던 미 자본주의 시스템이 엔론 사태와 이후 잇달은 미국기업들의 분식회계 문제, 감독기관의 소홀, 정경유착 등으로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미 자본시장을 외면하면서 이미 주가는 9.11 테러 당시와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 달러화 가치도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약세현상을 보이고 있다. 유로당 달러는 한때 0.98달러로 밀리며 2년래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 때문에 미국경기의 재둔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금리를 다시 내려야 한다는 '재인하론'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그동안 방관자적 자세로 일관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21일 "미국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호소했다. 현재 민간이 주축이 된 회계책임위원회(PAB)와 블루-리본위원회 신설 등을 통해 증시제도 및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 진행중이다. 그러나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다시 얻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 디레버리지와 증시자금 이탈 =현재 미국 증시자금 이동과 관련해서는 복잡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 자본주의 체제의 신뢰 상실과 최근 글로벌 펀드들이 안전자산을 다시 선호하는 경향(flight to quality)이 높아지면서 기존 미국증시에 투자한 유럽계 자금과 일본계 자금이 본국으로 회귀하는 성향이 뚜렷하다. 반면 미국기업들의 부진한 실적보전과 주가하락으로 수익률이 떨어진 글로벌 펀드들이 증거금대비 총투자 금액을 줄이는 소위 디레버리지(deleverage) 과정에서 개도국들에 투자했던 자금들을 회수하고 있다. 아직까지 미미하나마 미국증시로 자금유입세가 유지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해 4.4분기중 월평균 5백77억달러에 달했던 투자자금의 미국 유입액은 올들어 1백54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우려되는 것은 갈수록 미국증시에서 자금이 이탈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 미 달러화 약세와 신플라자 체제 =1995년 4월 미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 이후 지속돼 있던 '강한 달러화(strong dollar)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90년대 초에 이어 쌍둥이 적자(twin deficit) 시대가 재연됨에 따라 달러화 표시자산에 대한 매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 테러 가능성 등 경제외적인 요인도 한몫하고 있다. 최근 미 달러화 약세의 특징은 일본 유럽 등 상대국측 요인보다는 주로 미국경제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달러화 약세국면이 지속돼 신플라자 체제로 갈지 아니면 조만간 미국경기가 안정돼 달러화 가치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여부를 쉽게 점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국제통화기금(IMF)도 앞으로의 국제통화질서가 불안한 국면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