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거미손이냐' 25일 한국-독일간 4강전을 앞두고 최고의 수문장 대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이운재(29)와 독일의 올리버 칸(33)이 모두 절정의 기량을 갖고 있는 골키퍼인데다 양팀의 운명이 1~2점차로 엇갈릴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13골을 쓸어담은 독일은 주전 평균 1백80cm가 넘는 신장을 바탕으로 고공 압박플레이를 펼친다는 전략이어서 이운재의 선방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이운재와 칸은 강력한 야신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야신상은 역대 최고의 골키퍼인 러시아 출신의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94년부터 제정,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골키퍼에게 주는 상이다. 칸은 이번 월드컵 개막전부터 야신상의 '0순위' 후보로 평가되던 현역 최고의 골키퍼. 그러나 22일 스페인전에서 철벽수비를 펼치며 한국의 4강행을 견인한 이운재의 도전장은 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이운재는 예선리그 3경기와 16강전,8강전을 합해 지금까지 5경기 2실점으로 게임당 0.4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17개의 선방(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낸 횟수)으로 야신상은 물론 MVP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운재의 17개 선방은 칸의 15개보다 앞서는 기록으로,데이비드 시맨(잉글랜드)과 브래드 프리덜(미국)에 이어 전체 3위. 칸은 지금까지 5경기 출전해 단 1골만을 허용하는 그물수비를 과시하고 있지만 한국보다는 대진운이 좋았던 게 사실이다. 지난 98년 이후 국내 프로 축구에서 모두 8차례 승부차기 대결을 펼쳤던 이운재는 이 가운데 7차례를 이겨 '페널티킥 블록왕'으로 불린다. "승부차기야말로 가장 자신있는 분야"라고 공언하고 있는 이운재는 위기에 특히 강한 게 장점. 22일 스페인을 꺾은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운재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면서 "항상 죽을 각오로 경기에 임한다"고 말해 프로정신을 내비쳤다. 지난 2000년 '올해의 독일선수상'을 받은 칸은 2001∼2002시즌에 소속 팀의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을 한꺼번에 이끌면서 인생 최대의 절정기를 맞고 있다.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고릴라'란 별명을 갖고 있는 칸은 팀의 주장까지 맡고 있는 독일대표팀의 정신적인 지주. 이운재와 칸은 둘 다 역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운재는 94년 미국월드컵과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후보 신세였으며 간염까지 걸려 고생했다. 98년 프랑스월드컵때는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칸도 2차례의 월드컵에서 '벤치워머' 신세를 면치 못하다 98년 쾨프케가 은퇴한 후에야 주전에 오른 대기만성형이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이운재와 칸의 맞대결은 팀의 결승행 진출을 가름하는 동시에 야신상의 향방도 결정짓게 될 전망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