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4:14
수정2006.04.02 14:17
"삶의 황혼녘에 찾아온 사랑의 순간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싶습니다.노인들의 섹스는 살아있다는 증거지요.몸은 늙었지만 가슴은 여전히 젊습니다"
70대 노인의 성과 사랑을 담은 데뷔작 '죽어도 좋아'로 15일 개막된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박진표 감독(36)의 소감이다.
'죽어도 좋아'는 시대의 편견에 메스를 들이댄 작품이다.
영화속 노인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최후의 순간까지 온몸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두 노인이 공원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한 뒤 물 한그릇을 떠놓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들은 '사랑해요'란 말을 주고 받으며 섹스를 가장 중요한 일과로 삼는다.
이들의 생활은 갑자기 생기가 넘친다.
사랑이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청춘 또는 중년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가운데 노인의 섹스를 이토록 집요하게 추적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인문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영화로 사회적 담론을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그저 나이 많은 남녀의 로맨틱코미디로 봐 주십시오"
할머니가 서툰 한글로 '잠깐 나갔다 올게요'라는 메모만 써놓고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자 할아버지는 미친 듯 시장바닥을 헤매며 "내 마누라 못봤어요"를 묻고 다닌다.
할머니가 돌아오자 할아버지는 "왜 더 놀다 오지"라고 말하며 역정을 낸다.
노인역은 실제 부부 사이인 박치규(72) 할아버지와 이순예(71) 할머니가 연기했다.
두 사람은 2년전 양로원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올렸다.
박감독은 촬영에 앞서 이 부부와 석달간 함께 생활하며 부부간의 실제대화를 잡아내 영화속에 고스란히 살려냈다.
부부가 연로해 하루에 한 장면만 찍었다.
10여명의 스태프들이 동원됐고 제작비는 2억원이 소요됐다.
이 작품은 오는 18일과 19일 칸에서 공개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