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파워브레인] (1) '재정경제부' .. 경제 사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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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31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 1층 대강당에는 재경직 행정고시 합격자 80여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7개월간의 연수과정을 막 끝낸 이들이 어느 부처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배정원칙은 고시(50%)와 연수(50%)성적을 합친 성적순.
"재경부,재경부,재경부.."
호명을 받은 수석합격자부터 차례대로 재정경제부를 선택해갔다.
9등째 가서야 다른 부처(국세청)로 가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다시 10등부터 14등까지 모두 재경부.상위합격자 14명중 한명만 빼고 모두 재경부가 싹쓸이했다.
당시 14등으로 합격한 홍성기 국고국 사무관은 "상위합격자중 최소한 3~4명 정도는 다른 부처를 선택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상당히 놀랐다고 말했다.
경제관료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재경부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부처다.
재경부는 경제개발계획으로 명성을 떨친 경제기획원과 금융.세제를 책임지던 재무부가 합친 조직이다.
1994년 12월 김영삼 정부가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했다.
이후 "공룡부처"라는 비판과 1997년말 외환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속에 지난 98년 재경부로 축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경제기획원에 속해 있던 공정거래실(공정거래위원회)은 재경원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고,예산실(기획예산처)과 금융정책실중 감독기능(금융감독위원회)은 재경부로 축소되면서 딴 살림을 차렸다.
옛 경제기획원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다른 부처와 토론하면서 업무를 조정하는 일이 많았던 수석 경제부처였다.
조직분위기는 창의적의고 자유분방했다.
반면 국고지기와 세제,금융감독자 역할을 떠맡았던 재무부는 업무 성격상 보수적 색채가 짙었다.
조직내 상하관계가 분명했고 현실을 중시하는 실무형 관료들이 더 많았다.
재무부는 탄탄한 결속력과 퇴직 선배들에 대한 뒤봐주기,조직에 대한 충성과 이를 보상하기 위해 출세를 보장하는 "봉건적" 관행으로 한때 모피아(영문약칭이 MOF인 재무부를 폭력조직 마피아에 빗댄 말)로 불리기도 했다.
재경부는 경제정책과 세제 금융을 총괄하는 한국 경제의 심장부다.
그러나 옛 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진지 8년이 다 되가는데도 아직껏 독특한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과거 재무부 출신이 70% 이상 차지하고 있으나 재무부의 독특한 조직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는 개인과 가족을 더 중시하고,장.차관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의 경력관리와 전문성을 높이는 쪽을 선호한다는 지적이다.
출세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자리는 기피하고,해외로 나갈 길이 넓은 국제금융국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김규복 경제협력국장은 "내가 이재국 사무관일 때에는 국장이 저녁 늦게 갑자기 업무를 주면 밤새워 보고서를 만들었고,다음날 아침 출근전에 국장집으로 먼저 가 보고를 한 적이 많았다"며 "조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언젠가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밤늦게 남아 일하는 공무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장급 이상 간부들도 많이 변했다.
"장관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로 부하직원들을 쪼아대며 일을 시키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두주불사형"이라거나 "불도저"로 불리며 장관이 시킨 일을 밀어붙이고,어떠한 난관에 부딛치더라도 반드시 주어진 업무를 완수해내는 저돌적인 관료들은 거의 퇴장했다.
부하직원들에게 합리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어하고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국장이나 1급 간부들 중에는 "장관이나 차관을 1~2년 정도 하고 어설프게 옷을 벗느니 차라리 지금 좋은 자리로 나가 내 몫을 챙기는 게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충성심이 약해졌다.
전윤철 부총리가 하이닉스 매각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산된 것이나,정부가 내정한 이진설 서울산업대 총장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관철시키지 못하고 결국 민간호선으로 뽑은 강금식 위원장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지적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