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군의관의 휘장에는 뱀 두 마리가 지팡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유럽의 병원이나 약국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는 뱀을 새긴 문장이나 표지를 볼 수 있다. 도대체 뱀과 의술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신화 연구가이자 작가인 이윤기씨는 그 해답을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찾는다. 신화에서 뱀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使者)로 여겨졌고 겨울잠과 허물 벗기의 특성이 재생과 순환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씨가 이처럼 생활 주변이나 회화 건축물 조각 등에 담긴 신화적 의미를 이야기체로 풀어낸 '길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작가정신, 1만2천원)를 펴냈다. 이씨가 여기서 택한 방법은 우리 시대의 문화로부터 신화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른바 '신화, 거꾸로 읽기'다. 서울 신세계백화점의 정면 문 위에는 기다란 줄 모양의 꽃다발이 가로로 늘어지게 걸려 있다. 평소 여기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탈리아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정면, 프랑스 파리 '팡테옹'의 측면에서 같은 모양의 장식을 발견한다면 놀랄 만하다. 이 꽃다발 장식은 강(江)의 신 아켈로오스의 '코르누코피아(풍요의 뿔)'에서 유래된 것. 아름다운 데이아네이라를 차지하기 위해 헤라클레스와 대결하게 된 아켈로오스는 우람한 황소로 둔갑해 싸우지만 뿔 하나가 꺾이는 바람에 패하고 만다. 이 때 물의 요정들이 이 뿔을 거둬 안에 과일을 넣고 꽃을 꽂아 신들에게 바치자 풍요의 여신인 '코피아'가 이 뿔에 축복을 내려 아무리 꺼내도 늘 과일과 꽃이 가득 차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이씨는 국내를 비롯해 그리스 터키 영국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며 발견한 문화적 상징물들을 통해 신화의 의미를 역추적한다. 박물관 의회건물 미술관은 물론이고 백화점 외벽, 과일가게, 화장실 표지판 등이 그의 눈에 포착된다. 이씨는 이를 통해 신화가 더이상 남의 나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과 현대문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행중에 겪었던 에피소드와 직접 찍은 사진들이 낯선 인명과 지명으로 인한 부담감을 덜어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